2025.07.07 1243명이 봤어요
충남삼성고등학교 양병문 선생님
지난 글에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내신 산출 방식을 살펴보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보다 더 많은 과목에서 성취도와 석차 등급을 병기 한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 방식은 고교학점제의 핵심 철학과 맞물릴 때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은 깊이 있는 학습, 교과 간 연계와 통합, 삶과 연계한 학습, 학습 과정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역량 함양 교과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에 맞추어 교과교육에서 평가는 교과 수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되,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 디지털 기반 원격 수업에서의 평가 등과 같이 교과별 특성을 고려하여 평가의 원칙과 중점을 제시하였으며, ‘평가 방법’에서는 교과 특성을 고려하여 교과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방법을 제시하였다.¹
<그림 1> 역량 함양을 위한 교과 교육의 강조점²
¹, ²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성취수준 개발 연구(총론)(2024.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평가 방식의 핵심은 성취평가제이다. 성취평가제는 국가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개발된 교과목별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로 학생의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제도이다. 즉, 상대적 서열에 따라 ‘누가 더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상대평가 방식이 아니라 미리 설정한 준거(성취기준, 성취수준 등)에 비추어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하였는가’를 평가하는 절대평가 방식을 따른다.³
<그림2> 성취평가제와 상대평가의 비교
: 성취평가제에서는 교과목별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에 따라서 학생의 성취수준을 ‘5단계(A-B-C-D-E)’, ‘3단계(A-B-C)’, ‘이수 여부(P)’로 평가한다.
2025학년도 입학생부터는 고교학점제와 연계하여 모든 과목의 성취도를 대입 전형 자료로 제공한다.⁴
그렇다면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인 성취평가제가 상대평가 방식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충돌할까? 고교학점제에서 수행평가 중심의 과정 중심 평가가 강조되는 이유와, 그와 달리 상대평가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파악해보자.
1. 고교학점제에서의 평가는 성취 기준과 평가 계획수립으로부터 시작한다.
고교학점제에서 교사는 수업 전에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 요소를 선정한다. 이후 성취기준별 성취수준, 학기 단위 성취수준, 최소 성취수준을 설정하며, 이 과목을 통해 학생이 도달해야할 기대 수준을 명확히 한다. 이는 단순히 결과가 아닌, 과정과 성장의 의미를 담은 평가 기준이며, ‘어떤 수준까지 성취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체계적 설계다.
교사는 각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3~5단계로 나누어 성취수준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평가 계획을 수립한다. 이러한 계획은 단위 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에 따라 공지되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요한 절차로 작동한다.⁵
이때 평가 요소는 단순한 지식의 암기 수준을 넘어서, 학생이 실제로 어떤 능력과 태도를 습득했는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성취기준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것으로 평가되기 어려우며, 수업 내 토의, 프로젝트, 발표 등을 통해 학생이 얼마나 이러한 역량을 실제로 보여주었는지를 관찰하고 판단해야 한다.
³, ⁴, ⁵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학생평가 톺아보기(2025. 교육부)
2. 수행평가는 성취평가제의 취지를 살린 평가 방식이다.
고교학점제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주요 수단은 크게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나뉜다. 지필평가는 흔히 말하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정기고사를 말하며, 선택형이나 서답형 문항으로 구성된다. 수행평가는 교사가 수업 시간 중 학생의 학습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이를 교사의 전문성으로 판단하여 평가하는 방식이다.
수행평가는 단순히 결과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태도,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등 복합적인 학습 역량을 측정한다. 평가 요소는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 등을 포함하며, 과제의 성격에 따라 서술·논술형, 실험·실습형, 프로젝트형, 포트폴리오형, 구술·발표형, 토의·토론형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할 수 있다.⁶
⁶ KICE 학생평가지원포털 : https://stas.moe.go.kr/scrng/scrngStdTyp/scrngStdTypClsList:s3
성취평가제에서의 수행평가는 교사가 단지 결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수행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프로젝트형 수행평가의 경우, 결과물이 아무리 완성도가 높더라도 협업 과정에서 역할 분담이 불균형했거나,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은 정황이 있다면 이에 대한 관찰을 통해 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에서 수행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그것이 성취평가제의 철학과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판단하는 평가에서, ‘누가 몇 번째로 잘했는가’ 보다는 ‘각자가 기준을 얼마나 달성했는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논리적 발표 능력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실험 과정에서 과학적 탐구역량을 얼마나 충실히 발휘했는지는 상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타당하다.
그리고 고교학점제는 단순히 교과 이수 여부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과 진로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제이다. 수행평가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자각하고, 피드백을 통해 학습 개선의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답'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고교학점제의 교육철학과도 같은 방향성을 지닌다.
3. 성취평가제에서의 절대평가 방식은 상대평가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성취평가제는 과정 중심의 평가를 지향함에도 ‘2028 대학 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에 의해 ‘상대적인 등급’이라는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고교학점제는 본질적으로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보는 절대평가 체제인데, 교과 내에서는 여전히 석차 등급이 병기 하여 상대적인 등수로 학생을 평가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상대평가는 학생 집단 내부에서 성취 수준을 비교하고 등급을 일정 비율로 분포시키는 구조다. 어떤 학생이 성취기준을 충분히 넘어섰다고 하더라도, 집단 내 다른 학생들이 더 높은 성취를 보였다면 낮은 등급을 받게 된다. 이는 성취기준 도달이라는 절대평가의 취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학습 동기를 왜곡시키는 원인이 된다. 예컨대 한 과목에서 10명 중 8명이 성취기준을 충분히 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평가가 적용되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상위 1명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 결국 ‘기준을 넘어섰는가’가 아닌 ‘타인보다 더 잘했는가’가 평가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사는 수행평가에서도 촘촘히 서열을 매겨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졌다. 학교에서는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를 시행하면 성취 기준을 넘은 모든 학생에게 같은 점수가 부여된다. 따라서 수행평가는 절대평가의 성격을 가지게 되므로 수행평가 결과로 학생들의 등수를 가리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변별력을 만들기 위해 제출 여부, 기한 엄수 여부 등의 정량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거나 지필고사와 비슷한 형태의 수행평가를 기획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은 수행평가를 성실히 수행하고도 석차 등급이 낮게 나오면 좋은 평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학생은 수행평가를 통한 개인의 학업 역량의 성장에 신경 쓰기보다는 ‘서열 경쟁’을 위해 수행평가는 점수를 받을 만큼만 적당히 하고 지필평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는 평가가 학습의 방향을 결정짓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절대평가를 지향하지만 결과는 상대평가'라는 모순에서 학생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한 학생이 성취기준을 모두 달성해도 '등급을 올리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한다'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협업보다는 경쟁을, 성찰보다는 전략적 학습을 유도하는 교육환경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 시기보다도 학생에게 과정중심 평가를 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할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상대평가 확대에 대한 해결책으로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와 함께 모든 과목의 성취도를 대입전형 자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과목은 석차등급을 병기하고 있어 평가 체계가 절대평가 혹은 상대평가로 일원화되지 못한 상태다.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평가 방식이 혼재되면, 평가의 방향성은 길을 잃게 된다. 예를 들면 수행평가를 통해 수집된 학생의 변화와 성장 자료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나⁷, 정작 내신 산출의 최종 결과물은 수치화된 등급으로 귀결되므로 학생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⁷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성취수준 개발 연구(총론)(2024. 한국교육과정평가원)
4. 2022 개정 교육과정 수업에서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는 정착될 수 있을까?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전반의 일관된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가의 본질은 학습자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며, 그것이 제도적 운영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교육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취평가제에서는 수행평가가 지필평가만큼 매우 중요해졌다. 만약 수행평가의 비중을 줄이고 지필평가 중심으로 평가 결과가 좌우된다면, 성취기준 기반 평가의 교육적 효과는 축소되며, 결과적으로는 고교학점제의 철학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수행평가의 비율은 절대 낮아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학교에 입장에서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제도에 따라 원점수 40점 미만 학생들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가 전체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필평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업에서 수행평가의 운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다음 주제에서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과정 중심 수행평가를 운영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교육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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