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의 힘과 한계

2025.09.30 95명이 봤어요

서울문영여자고등학교 안지웅 선생님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은 ‘기록’이라는 한 단어로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교사와 또래와 어울리며 남긴 모든 흔적이 곧 생활기록부에 기록되고, 이 기록이 대학 입시의 가장 중요한 결정적 증거로 쓰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쌓은 경험이 그렇듯, 학업을 해나간 여정, 실패와 성장에 담긴 의미까지 오롯이 기록에 남는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듯, 기록 역시 매우 큰 힘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 역시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6학년도 수시 원서가 마감된 9월,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라면 기록이 지니는 힘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한계와 고민을 함께 들여다볼 시점이다.

 

 최근 들어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이른바 ‘세특’이 학생부 기록의 주요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에는 교사들이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활동을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세특을 작성한 적이 있다. '무엇을 했다', '어떤 행사에 참여했다'는 식의 단순한 나열이 오히려 활동의 실질적 의미나 학생의 내적 변화와 성장 과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기록을 그저 채워 넣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키곤 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해당 활동에 대한 교사 본인의 평가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마치 활동 목록을 서술문으로만 적어 둔 듯한 학생부가 흔했다. 본래 학생부 기록이란 학생이 경험한 교육 활동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과 활동의 맥락을 이어가는 서사의 핵심이 되고, 해당 과정에 대한 교사의 세밀한 관찰과 반영이어야 한다. 세특은 학생이 수업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학습하고, 개념을 탐구하며, 실질적인 성장을 이루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창이다. 대학에서 학생부를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은 세특 수백 자에 담긴 단어의 선택, 문장의 연결, 배경 맥락, 다른 기록 항목과의 유기적 연계까지 모두 세심하게 읽어내며, 그 안에서 학생의 학업구조와 방식, 역량을 판단한다. 과정 중심의 서술과 반복적 탐구, 심화 선택과목의 이수 과정에서 학생이 왜 그 길을 선택했고, 어떻게 실천했고,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중심으로 학생의 성장 곡선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록이 가진 힘은 일관성과 구체성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끝낼 내용을, 정량적으로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미사여구를 덧붙여 길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기록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의 세심한 관찰이 녹아든다면, 학생 역량이 깊이 있게 드러나도록 기록된다면, 평가는 전혀 다른 수준의 밀도를 갖게 된다. 특히 상대평가 체계가 적용되는 현실에서 기록은 또 다른 힘을 행사한다. 각 학교마다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이 다르더라도, 원점수, 평균, 수강자수, 성취도 분포와 같은 수치적 지표와 이를 서술적으로 보완하는 기록이 결합됨으로써 학생 간 비교가 가능해진다. 교과 세특은 이러한 지표에 맥락과 이야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기록은 학생의 학문적 언어 사용과 탐구 태도를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개념을 배우고, 과제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더 궁금한 점을 탐구하여, 토론에서 반례를 들어 논의를 이끈 경험, 이런 활동과 태도가 세특 문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학생의 진로와 연계된 탐구와 성찰의 기록 역시 진로 역량을 평가하는 데 유력한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입시 정책 변화의 흐름은 기록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자기소개서 폐지, 블라인드 서류 평가 및 면접의 강화,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 필수 반영 등은 이전과는 다른 기록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이제 교과와 수업에 대한 기록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중심 무대가 되었고, 비교과보다 교과세특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교사의 기록 전문성이 더없이 중요해진 이유다. 목표와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학생마다 수행한 결과와 과정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남기는 것이 필수가 된 셈이다. 동일한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도 개별 기록의 진정성을 어떻게 담아내는지에 따라 평가의 결이 크게 달라진다. 교사는 학생의 학업 및 탐구 활동 시도, 학습 태도, 평가 피드백의 결과와 그 의미까지 꼼꼼하게 남길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정확하고 깊은 관찰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학생 역시 자신만의 자기주도적 학습 설계와 성찰 과정을 끈기 있게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학년이 지나며 교과와 비교과 사이, 교과와 교과 사이 연계된 활동과 성장이 두드러질수록 기록의 신뢰도는 크게 높아진다. 블라인드 평가가 현실이 된 환경에서는 출신 학교, 배경, 지역 등 전통적으로 영향력이 크던 요소가 힘을 잃고, 기록의 내용과 구조 그 자체가 평가의 중심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실상 각 학교의 교육과정과 과목명을 들여다보면 단번에 일반고나 특목고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기록의 정확성, 투명성, 활동의 진정성이 판단 기준이라는 점에서 변함이 없다. 비교과와 교과 간 연계성이 나타나지 않는, 소위 이벤트성 스펙에 치중된 기록이나 추상적 표현이 강조된 문장들은 진정성을 잃기 쉽다. 진짜 힘을 발휘하는 학생부 기록이란, 교실 안에서의 개별 학생 역량 발현과 일상 속 실천 중심 맥락을 읽어낼 때 비로소 평가자의 신뢰를 산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과연 어떻게 학생들의 역량을 읽어 낼까? 학생부종합전형의 기본 틀은 서류 기반 정성평가다. 대학마다 서류 합산형, 서류-면접 분리형 등 세부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학생부 중심의 학업 역량, 진로탐색, 인성, 발전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대학이 핵심적으로 읽어 내려는 것은 교과 이수의 폭과 깊이, 성취의 변화추이, 탐구 활동의 확장 정도, 과제 수행 과정에서 피드백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등이다. 면접은 기록에 담긴 활동과 교사의 평가가 진실하게 맞물리는지, 학생 스스로 이를 자신의 언어와 근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 기록의 공백과 해당 과정에 대해 얼마나 충실하게 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기록의 힘은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 전체 맥락을 얼마나 잘 읽어 낼 수 있게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며, 선택과목의 이수 맥락, 탐구활동 결과와 사후 성찰을 진로와 독서 활동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순간, 평가의 신뢰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반대로 기록이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고 일관된 축이 없을 때는 그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학생부 기록의 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관찰자의 시선’이 크다. 기록 주체인 교사마다 수업 구조와 평가 철학이 달라 편차가 생긴다. 국어 교사의 기록과 수학 교사의 기록이 다른 결로 읽히기도 한다. 수업 외의 행정 업무에 치여 과정이 생략된 기록이 양산되기도 한다. 학기 말에 몰아 작성하다 보니 결과 중심, 하이라이트 위주의 서술로 일관하는 경우이다. 결국 학생의 성장 과정이 빠지게 되는 셈이다. 또한 기록은 ‘과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범적’, ‘성실한’ 같은 추상적 수식어의 반복은 기록의 힘을 오히려 깎아내린다. 조그마한 실패를 남겼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극복해 성장한 과정이 기록에 담길 때 진정성이 살아난다. 그러나 교사의 시간이 부족해 관찰이 미흡하면 학생의 소소한 성찰이나 협업 과정은 쉽게 사라진다. 면접에서 이런 공백이 드러난다. 반대로 꼼꼼하게 서술된 과정은 평가자에게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검증의 장을 만든다. 학생이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기록은 확장된다. 그러나 근거 없는 문구와 단순 나열은 오히려 의심을 낳는다. 블라인드 제도는 출신 배경을 지웠지만, 결국 학교별 교육과정 격차나 교사의 기록 역량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기록은 오히려 부정적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면접은 이렇게 공백이 생기는 지점에서 학생의 언어와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구체적 사실과 맥락, 성장의 과정이 남겨진 기록일수록 평가자에게 더 많은 질문을 이끌어 내고, 진실한 검증의 장을 마련한다. 결국 학생이 자신의 언어로 기록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면, 면접은 그 학생 역량의 확장과 연결의 장이 된다. 이 과정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할을 담당한다. 반대로 근거 없는 형용사, 단순 스펙 나열, 불분명한 과정의 기록은 오히려 평가자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블라인드 환경에서는 기록의 출처와 맥락이 불분명하면 불리하게 작용한다. 입시 제도 변화가 새로운 사각지대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정책은 학생 개개인의 배경 영향력을 줄여주었지만, 학교별 교육과정 격차, 기록 전문성의 차이 등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반영도 시기와 경중, 회복 의미를 읽지 못하면 학생에게 부정적 낙인이 될 수 있기에 균형 잡힌 시선이 중요하다.

 

 

그럼, 학생 입장에서 학생부 기록을 잘 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수업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수업 목표와 평가 기준을 명확히 이해하고, 과정 흐름과 근거, 내용의 반례 등을 직접 탐색하며, 수정의 흔적 역시 기록에 남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목 간 연결과 심화 탐구 경로를 스스로 설계해 보거나, 간학문적 탐구를 통해 협업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추천할 만한 방식이다. 탐구 과정에서 동료와 협업하며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면 기록의 설득력은 배가 된다. 이런 기록에는 자료의 출처와 인용을 정확하게 담고, 데이터의 한계나 오류 가능성까지 함께 인정하며 써야 하며, 동료의 기여도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특히 최근 AI 시대에는 이러한 윤리적 언어와 학교생활에 대한 책임감 있는 과정과 서술이 득이 될 것이다.

 

 

학교와 교사, 학생과 학부모는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까?

 

 우선 학교는 수업-평가-기록의 선순환 구조를 공식화해야 한다. 평가 기준과 루브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동 서술 원칙과 예시 문장을 학교 차원에서 공유하며, 교사 대상의 실질적인 연수를 통해 기록 품질의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초창기에는 예시 문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교사 간 공통 기준을 만든 뒤 각자의 색깔로 세특을 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경주한다. 교사는 자신의 서술 역량, 평가의 최신 동향, 데이터 관리와 윤리적 글쓰기 기준에 대한 연수를 끊임없이 받아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학생을 더욱 잘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역시 탐구과정에서 기록 역량을 기르고, 포트폴리오 관리, 자료 조사·인용 등 기본기를 적극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안내받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학생·학부모 입장에서는 희망 대학의 전형 계획과 모집 요강에 담긴 평가 항목과 세부 가중치를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실제로는 입결, 교과 반영 비율, 면접 여부, 최저 등급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만 챙기고, 학교별 내신 구조나 비교과 기록, 대학별 면접 질문의 성격 차이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학별 전형과 평가 안내를 확인하고, 과목 선택이나 과목별 탐구 과제 설계에 반영하는 전략은 생각보다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덧붙여,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해당 기록이 남는 경우는 드물지만,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대학에서 반드시 반영된다. 학교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고, 학생은 책임과 성찰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활동과 좋은 과정이 있다 해도,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은 냉정하게 마주해야 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이며, 기록은 그 변화를 증명하는 고유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기록의 경쟁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교육의 장’이라는 본질을 늘 앞에 두어야 한다. 기록의 힘은 교실 안에서, 학교에서, 해당 학생의 살아 있는 이야기에서 비롯되고, 그 한계는 관찰과 해석의 차이, 시간적 제약에서 생긴다. 학교와 교사는 수업-평가-기록이 이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학생은 데이터와 과정을 남기는 학습, 학부모에게는 조력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좋은 학생부 기록은 살아 있는 교육의 결과이자 성장의 증거다. 교육이 견실하게 이루어질 때, 기록은 학생과 학교의 성장을 증명할 수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기록의 경쟁장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를 기록하는 진짜 교육의 현장이어야 한다.

 

#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