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생명공학과 선배의 경험담 모음집 - #4. 진로편
안녕하세요. 건국대학교 첨단바이오공학부 25학번 멘토 건대첨바공25입니다! 여러분, 7월 한 달은 어떠셨나요? 작년 제 7월 한 달은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달이었던 것 같아요. 시험을 망친 나 자신에게 화났고, 3학년 성적 때문에 대학라인이 내려간 것이라는 선생님의 1학기 마지막 상담 말씀에 슬펐지만, 2년 반의 오랜 입시 생활이 끝났다는 마음에 기뻤고, 친구들과 마지막 내신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방과후에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물총 놀이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어 신났던 한 달이었습니다. 수험 생활을 하며 슬프고 힘들 나날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며 한 번밖에 없는 10대의 청춘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20살이 되고 수험생활이 끝나 막 놀아볼까 생각하다보니 저는 10대만이 할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을 놓친 것 같더라고요. 여러분의 반짝이고 소중한 10대는 돌아오지 않으니 목표를 향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행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떤 정보를 공유한다기 보다는 저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왜 생명공학을 지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혹시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조그만한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 작성해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거대한 꿈을 가지고 생명공학을 꿈꾼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이유로 창피하게 꿈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들도 진로를 정할 때 다른 사람들 눈치보지 말고, 원하는 바를 때로는 현실적이게 변경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스토리노트 진로편 시작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보자면 제 초등학교 1학년 때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단지 칠판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멋있고, 학생들이 다 선생님 말을 따랐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멋진 대장같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리더를 좋아했던 저는 멋진 대장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이 꿈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12살짜리 꼬마가 현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던 꼬마는 뉴스 기사들을 보고, ‘아 초등학교 교사는 이제 임용이 안되는구나’라는 이유로 5년간 꿈꿨던 꿈을 한 방에 접어버렸습니다. 이후 저는 어떤 직업을 할까 고민을 하던 중 [내일은 실험왕]이라는 만화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내일은 실험왕 실험 키트보다 책 속 실험에 더 관심을 가지는 아이였습니다. 이에 저는 연구원도 아닌 과학자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13살 꼬마에게 어른들은 현실을 말해주셨습니다. ‘ㅇㅇ아 만약에 과학자가 되려면 교수님의 노예가 되서 20대를 다 날려야해. 대학가서도 공부만 해야하고, 돈도 많이 못벌어.’라는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들을 현실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해주셨지만, 저는 아이였기에 이 말을 믿고 또 다시 꿈을 접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꿈을 잃은 상태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제가 공부를 잘하는 학생임을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중학교 1학년 입학식 날 1교시에 갑자기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다가 강당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2월에 본 반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였기에 입학식인 3교시에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14살 꼬마는 착각을 시작합니다. ‘우와, 나 공부 잘하나봐..!’라는 착각을 한 채로 이 때는 진로 고민보다는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15살 중2가 되고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하여 학교를 못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군인이셨고, 특히 아버지 직무가 병사 삼촌(그 당시에는 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친구 또는 오빠 뻘입니다…)들과 함께 생활하시거나 교육하시는 직무였기에 군인 가족이 감염되어 부대에 전염될 시 아버지에게 불이익이 가는 구조였습니다. 때문에 저희 집은 정말 집에서만 생활했었고, 학원, 과외도 안했었기에 친구는 커녕 오빠, 엄마, 아빠 외에는 어떤 인간도 만나지 못한 채로 집에서만 생활했었습니다. 참으로 웃긴 말이지만, 저는 당시 너무 심심했고, 심심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반배치고사는 솔직히 대충 본 학생들이 더 많아 그 것만으론 전교 등수를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저희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가내신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었는데, 이 가내신으로 전교 등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심심해서 한 공부로 학원, 과외, 중학생 때는 EBS 외의 인강 사이트 도움도 없이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시 저는 큰 착각을 합니다. ‘나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겠는데?’라는 착각 속 저는 가장 좋아했던 동물을 주제로 진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과학에서 심장을 배울 때 너무나 재밌었고, 그 당시 최고의 이슈 푸바오를 보며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착각을 바탕으로 부모님께 ‘엄마 아빠, 저 수의대 갈테니까 강아지 키우게 해주세요!’라고 당당히 말했고, 지금의 저희 집 반려견 쿠키는 이때 저희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약속을 안지켰죠 제가..엄마아빠 미안해..)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말, 졸업할 때 즈음 저는 수의사라는 진로를 가지게 됩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저는 입학 성적 전교 1등으로 3년 장학금을 받는 학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선생님들께선 저에게 진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수의대라고 말할까 의대로 말할까 고민하다가 수의대는 전국에 10개밖에 없으니 의대로 생기부를 준비하다 성적이 잘나오면 2학년 때 수의대로 바꿔야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바탕으로 의대를 지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간고사를 보고 현실을 아주 빠르게 깨닫았습니다. 1.9등급이라는 성적을 받고, ‘아, 이게 내 실력이구나’라는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아마 제가 직시한 현실(어른들이 말했던 현실들 포함)들 중 가장 제대로 된 현실이었습니다. 학원과 과외 없이 혼자서 공부하는 제 역량은 중학교까지만 발휘했고, 고등학교에서는 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기출을 풀어보는 학생들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감히 메디컬을 포기하려하였지만, 선생님들의 회유와 최종 성적을 잘 받으면 된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저는 약대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른들의 말에 따라가는 꼬마가 아니었던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성적으론 약대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나 부모님께는 약대라 말씀드렸지만 생기부를 생명, 화학 쪽으로 작성하는데 몰두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약대나 메디컬 언급은 자제해 달라고 부탁드릴 정도로요. 이후 2학기까지 최종 성적이 나온 후 1.94라는 성적을 받았고, 이제서야 어른들께 메디컬을 포기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고민한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생명과 바이오가 좋았고, 질병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나 생명공학 기술에 더 관심이 있어 생명공학과를 지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성적이 안되어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지 못하는 대신, 약을 만드는 약사가 되지 못하는 대신,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진로를 찾던 중 생명공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머리를 굴려 생기부의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사실 저희 오빠는 소아백혈병 환우였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백혈병과 바이오 의약품을 주제로 생기부를 빌드업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학년 때는 생명과 화학에 관심을 가져 최종적으론 생명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 2학년 때는 질병을 치료하는 바이오 의약품을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 3학년 땐 이 바이오 의약품 기술로 오빠의 질병을 더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은 학생으로 보이도록 생기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면접에서는 ‘태어나기 한 달 전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 받은 오빠와 살아왔고, 오빠는 4년의 항암치료와 7년의 추적 검사 기간을 거쳐 완치를 받는 것을 보며 자라왔었다, 백혈병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질병에 맞서는 기술들을 고등학교 때 알게 되었다, 이 생명공학 기술들을 생존율과 부작용 위험을 혁신적으로 줄였으며, 환우의 가족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긴 치료기간을 말도 안되게 줄인 것을 보게 되었고, 나 역시 이러한 기술이 개발되는데 일원으로써 도움이 되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라는 내용을 밝히며 가산점을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생명이 재밌고, 하고 싶은 일이었고, 거짓은 하나 없이 사실만으로 대입에 임하였지만 전 대입 기간 내내 이 마음들이 진심일지 제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일지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으로 저는 지금 건국대 수의학과는 아니지만 건국대 첨단바이오공학부에 재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속물적인 이야기까지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진로를 결정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과 감동으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몇몇의 사례를 보면 ‘진로는 저렇게 정해야 하는건가?’라는 의문과 함께 그러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대다수고 저 역시 꿈이 없던 시절엔 그랬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사례를 말씀드리며 여러분들에게 ‘속물적이면 어때? 감동이 없으면 어때? 고작 10대의 꼬마들에게 꿈을 강요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걸? 그 사회 속에서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꿈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꿈이 없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보세요. 카페 사장이어도 좋습니다. 우주 비행사여도 좋습니다. 세상에는 하고 싶던 직업과 비슷한 일을 하는 직업도 많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 여러분의 진심입니다. 오늘의 스토리 노트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작성해보게 되었습니다. 단 한 학생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에게는 제 글이 위로가 되었길 바라며 오늘의 스토리노트 진로편 마무리하겠습니다:) 8월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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