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들어오기 전, 과팅은 막연히 “대학생다운 이벤트”라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생 때 상상하던 대학생활 속 과팅은 다들 자연스럽게 웃고, 센스 있는 말이 오가고, 끝나고 나면 연락처를 주고받는 그런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첫 과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괜히 마음이 들떴어요. 드디어 나도 대학생이 됐구나, 이런 자리에 나가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대는 타 과였고, 다들 “컴퓨터학부면 말 잘 못해도 웃기다” 같은 농담을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과팅 당일, 나름대로 준비도 했어요. 후드티 대신 셔츠를 입고, 평소보다 머리도 신경 써서 말렸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어색함을 깨려고 나온 질문이 “전공 뭐예요?”였고, 거기서부터 제 실패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어요. 상대방이 전공을 말하면 저는 자동으로 그 전공이랑 컴퓨터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그 전공이면 이런 시스템 있으면 좋겠다”, “이런 프로그램 만들면 편하겠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았어요. 그러다 보니 대화가 사람 이야기보다는 기능 이야기, 구조 이야기로 흘러가더라고요.결정적인 순간은 “요즘 학교생활 어때요?”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였어요. 보통은 “수업 힘들어요”, “친구들 사귀는 중이에요” 정도로 답했어야 했는데, 저는 진심으로 요즘 제일 인상 깊었던 일을 떠올렸어요. 새벽 세 시까지 안 돌아가던 코드가 있었고, 알고 보니 변수 하나 초기화를 안 해서 생긴 문제였다는 걸 발견했던 날이었어요. 그 순간의 쾌감이 너무 강렬해서, 그 얘기를 신나게 하기 시작했어요. “진짜 그거 하나 때문에 몇 시간을 날렸는데, 딱 고치니까 바로 돌아가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혼자 웃었어요. 근데 상대방 표정은 웃음이 아니라 ‘이 얘기가 언제 끝나지?’에 가까웠어요.분위기가 미묘해진 걸 느끼고는 급하게 화제를 바꿔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선택도 좋지 않았어요. “혹시 노트북 뭐 쓰세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거기서 또 한 번 불이 붙었어요. CPU, 램, 저장장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저는 그걸 설명해줘야 할 의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했어요. 그 순간 저는 과팅 자리에 나온 대학생이 아니라, 동아리 OT에서 신입생 잡고 설명하는 선배 같은 모습이었어요. 옆 테이블에서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우리 테이블은 점점 조용해졌어요.진짜 실패를 실감한 건 과팅이 끝나갈 즈음이었어요. 다 같이 연락처를 교환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제 쪽에서는 아무도 먼저 번호를 묻지 않았어요.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긴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계속 확인했어요. 혹시나 누군가 연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결국 아무 알림도 오지 않았고, 그날 밤 저는 침대에 누워 과팅에서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왜 그 얘기를 했을까, 왜 굳이 그렇게 자세히 설명했을까 하면서요.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실패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나답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퓨터학부 학생으로서 하루 대부분을 코드랑 씨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과팅에 나가면, 당연히 그런 얘기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날은 실패였지만, 동시에 대학생활의 현실을 처음 제대로 느낀 날이기도 했어요. 대학에서는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면 더 어색해진다는 걸요.중·고등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대학에 오면 과팅, MT, 팀플 같은 자리가 많아요. 그때마다 “잘해야 한다”, “대학생답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쉬워요.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 전공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고,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요. 컴퓨터학부 학생은 컴퓨터 얘기를 하게 되고, 그게 때로는 실패담이 되기도 해요. 중요한 건 그 실패가 부끄러운 흑역사로만 남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해주는 경험이에요.그 과팅 이후로 저는 조금 달라졌어요. 다음번에는 말을 아끼게 된 게 아니라, 제 이야기를 언제 꺼내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조금씩 배우게 됐어요. 동시에 제 너드미를 완전히 숨기려고도 하지 않게 됐어요. 대학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나랑 비슷한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실패한 과팅 하나가, 제 대학생활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계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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