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시로 대학에 갔으며, 1학년 1학기는 대학생활을 했고 1학년 2학기에는 반수를 했습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재수율이 70% 정도 되기에 주변에는 재수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수능 국어 단과 선생님의 조교로 일하며 많은 현역 및 N수생 학생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현역 정시 준비와 반수 생활, 재수 생활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비교하여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적 흐름과 멘탈 관리, 자잘한 꿀팁 등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정시러로 돌아서기 현역 정시러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루트는 2학년 때까지 평탄하게 수시를 준비하다가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거나 성적이 떨어져 정시로 돌아서는 경우입니다. 대략 2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이나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부터 정시러가 됐음을 선언하고는 하는데, 생각해보면 이 때 정신을 차렸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시러라고 선언하고서 내신을 포기하는 행위는 2학년 2학기를 놀면서 통째로 날리겠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께서 여기까지 읽으며 조금이라도 찔리셨다면, 지금이라도 확실히 정시 준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수험생의 생활루틴을 체화하셔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플래너를 작성하고, 수능 관련 인강이나 단과를 수강하며 자습을 병행하시는 정시 공부 말입니다. 만약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당해 수능에 응시해보시기 바랍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러셀에서 열리는 모의수능에 응시했었습니다. 수능날에 러셀 자습실에 등교하여 실제 수능 시간표에 맞게 수능 문제를 풀어보는 것입니다. 진짜 수능처럼 도시락도 싸가야 하고, OMR을 작성하는 연습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의고사보다 현장감을 느끼기 좋습니다. 2학년 때 모의수능에 응시해보면 3학년 때 보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계획할 수 있고, 실제 수능에서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지 루틴을 짜기에도 용이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정시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내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내신 성적을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내신 공부는 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수능은 내신 시험과 크게 괴리되지 않습니다. 내신에서 배운 문법, 문학 작품, 영단어, 탐구 개념이 수능에 그대로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능의 출제원리가 더 심오하고 내신이 지엽적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신 준비가 수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신, 버리지 마십시오. 내신을 버릴 것이라면 죽기 살기로 수능 공부를 하십시오. 2. 현역 정시 현역 정시의 가장 큰 특징은 압박감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3월, 4월에 치룬 교육청 모의고사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받았을지라도 N수생이 편입되는 6월 모의고사의 성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고1때부터 고3 4모까지 한 번도 국어에서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지만 6모 국어에서 4등급을 받았습니다. 가장 자신 없었던 수학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성적인데도 말입니다. 보통 6월 모의고사의 좌절감 때문에 7-8월에 슬럼프를 맞이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수시철이기 때문에 수시 상담을 받으러 다니거나 자소서를 준비하고, 논술학원을 다니는 등의 핑계를 대고 정시 공부를 소홀히 하곤 하는데, 이 때 스스로를 다잡으셔야 합니다. 9월 모의고사는 N수생은 물론이고 반수생도 편입되기 때문에 성적이 6월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가 두 번째 고비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셔야 합니다. 9모 성적을 잘 받은 경우에도 자만하여 공부를 게을리 하기 쉬운데, 수능 미만 잡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흔히 멘탈관리용이라고 불리는 10모에서 성적을 잘 놓고 자만하여 수능 직전까지는 컨디션 관리를 핑계로 쉬엄쉬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인데, 이 때가 세 번째 고비입니다. 10모 이후에는 사설 모의고사를 풀며 시험에서 시간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한국사나 탐구 개념을 벼락치기 하셔야 합니다. 문과의 경우입니다만, 한국사나 사회탐구에 대한 부담은 갖지 마시고 9모 이후로 빡세게 돌리셔도 수능 때 선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괜히 1-2월부터 탐구를 조금씩 하겠다고 덤비지 마시고 9-11월에 바짝 공부하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어차피 1-2월에 한 건 10월이 되면 까먹습니다. 아쉽게도 이과의 경우 과학탐구는 꾸준히 해야 한다고들 하더군요. 현역 정시러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조언은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PT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합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 산책하기, 등하교할 때 버스 한두 정거장 거리는 걷기 정도의 운동도 충분합니다. 여름에 세게 틀은 에어컨 밑에서 공부를 하거나 겨울이 되며 갑작스럽게 추워지는 날씨에 감기나 독감, 코로나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면역력이 필요하니 짬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 주변에서도 좋은 입시 성적을 낸 친구들은 아침에 3km 정도 러닝을 하고 등교를 하거나(사관학교를 준비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특수 케이스입니다) 자기 전에 홈트레이닝을 했었습니다. 특히나 햇빛을 받으며 운동을 하면 기분전환에도 도움이 되고, 우울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땐 운동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거 압니다. 제가 가르친 과외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도 책을 읽으라는 말만큼이나 꾸준히 하는 조언인데, 실제로 해보는 학생은 열 명 중 두어 명도 안 됐으니까요. 그렇지만 9월쯤 되면 확실히 후회하실 겁니다. "운동 좀 할 걸..." 하고 말입니다. 3. 반수 이 카테고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현재 수능과 논술까지 모두 마치고 놀면서 반수를 고민 중인 고3분들이시겠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 비추천합니다. 1학기에 학과 공부를 하다보면 수능에 적응됐던 감각들이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특히나 수학은 휘발성이 강해 원래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조차도 어렵습니다. 반수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셨다면, 수능이 끝나고 음주나 약속을 피하시며 큰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시험기간이 아닌 때에는 무조건 수능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입학해보면 아시겠지만 대학생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습니다. 수험생 때처럼 6-7시에 일어나셔서 공부를 하다가 학교에 가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중앙도서관에 앉아 또 인강을 들으셔야 합니다. 친구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유혹할 때에도 단호하게 거절하셔야 하며,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주말에도 늦잠을 주무시기보다는 학원에 가셔야 합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웬만한 멘탈로는 어렵습니다. 더군더나 소위 안전빵이라고 말하는, 현재 재학 중인 학교가 있기 때문에 마음이 헤이해지기 쉽습니다. "망해도 복학하면 되니까~"라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드셨다면 당장 그만 두시기 바랍니다. 반수가 망하게 됐을 때에는 생각하시는 것보다 골치가 아파집니다. 우선, 1학기 과목을 수강해야만 2학기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1학년 2학기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채로 2학년 1학기 과목을 수강할 수 없으니 커리큘럼이 꼬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휴학이나 교환학생도 꼬이게 됩니다. 또, 1학년 때 대부분 교양 필수 과목을 마쳐야 2학년 때부터 마음 편하게 학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데, 반수를 하느라 교양 필수 과목을 끝내지 못한 채로 2학년에 올라가게 되면 한 학번 아래의 후배들과 조별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3전공, 4전공을 하며 교양 시험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도 다반사입니다. 수능 공부를 하느라 과 생활(MT, 학생회, 학회, 동아리)에도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이도저도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자세하고 절망적이냐고 물으신다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반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반수를 하고 싶으시다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1학기에는 학원의 저녁반을 수강한다든지, 과외를 하며 수능 실력을 유지한다든지, 1학기 휴학이 되는 학교라면 입학하자마자 휴학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들이십시오. 더 자세한 반수 생활이 궁금하시다면 멘토링을 통해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4. 재수 재수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입니다. 현역 정시로 가는 게 가장 편하다고 하셨던 선배나 선생님들의 말씀이 생각나게 됩니다. 현역 시절에는 공부를 하다가도 고개만 돌리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공부하기 하기 싫은 날에는 잠깐 복도에 나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으며, 부모님께 마음껏 푸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수 생활을 하게 되면 친구들과의 수다나 일탈은커녕 연락도 힘들어지고, 대학에 간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책하게 됩니다. 재수의 장점은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는 것이고, 재수의 단점은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는 것입니다. 재수 성공한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관리를 엄격하게 해주는 학원에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고, 하루에 자습 시간만 10시간이 넘기 때문에 딴 짓을 하기 쉽고, 그걸 스스로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재수종합반 학원과 독학재수학원 등등 여러 곳을 비교분석한 뒤 본인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 곳을 택하십시오. 대부분의 재종반과 독재 학원이 2월 말에 개강하기 때문에 2월 말에서 수능까지 쭉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라 시작할 때에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역 때 어느 정도 실력을 다져두었다는 점과 하루에 투자 가능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자만하여 공부를 게을리 하셔서는 안 됩니다. 초중반에는 페이스 조절이 1순위가 되어야 하며 초반에 너무 힘을 빼서 후반에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강 전까지 운동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실력이 작년과 같은 것 같다는 느낌, 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슬럼프가 올 수 있겠지만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하던 대로만 공부하면 실력 향상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쭉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재수에 성공할 확률보다 재수에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재수에 실패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역 수능보다 높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수능의 난이도는 해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 있는 과목이 적당한 난이도로 출제될 것을 기대하며 재수를 하는 것은 너무나 큰 도박입니다. 금전적 측면에서도, 시간적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나는 이것보다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은 곧 자기혐오로 이어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그에 따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장 쉬운 것은 자기부정이기 때문입니다. 사설 모의고사 점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자책하고, 늦잠을 잔 날에는 우울에 빠져 하루의 공부를 포기해버리곤 하는 사례를 많이 봐왔습니다. 재수는 현역 수능보다 최소 세 배는 힘들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5. 수능 꿀팁 개인적인 수능 꿀팁은 첫 번째로, 옷을 얇게 여러 겹 입고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동아리에서 맞춘 반팔 티셔츠에 생활복 맨투맨, 학교 후드집업, 야구점퍼와 추리닝 바지에 보온 목적의 니삭스를 신어주었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히터를 틀어주는 경우가 많고, 이는 졸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입고 벗기 편한 옷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 도시락은 소화가 잘 되는 것으로 싸가되 든든한 음식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간혹 죽을 싸가서 탐구 시간에 배고픔에 떠는 친구가 있는데, 수능은 정신력과 체력을 많이 쓰는 일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정 죽을 싸가고 싶으시다면 중간중간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에너지바도 함께 싸가십시오. 도시락 용기를 닫기 전에 한 김 식힌 후에 닫아야 점심시간에 열리지 않는 도시락통을 붙잡고 굶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저는 흰쌀밥에 고기를 발라낸 감자탕과 치즈달걀말이, 배, 커피를 싸갔습니다. 덧붙여,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으며 한국사 필기를 정독했습니다. 세 번째로, 1교시 국어가 끝나면 급하지 않아도 화장실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많이 붐비기 때문에 시간 안에 화장실에 다녀오기 어렵습니다. 네 번째로, 각자의 마인드컨트롤법을 준비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제 친구는 국어가 망한 것 같다고 점심시간 내내 우느라 점심을 굶었지만, 국어에서 1등급을 받았습니다. 체감 난이도와 점수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내가 어려웠으면 남들은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우에는 쉬는 시간에 복도를 산책하며 멍을 때렸습니다. 문제를 풀며 멘탈이 흔들릴 때에는 자책할 바에야 다른 문제를 하나라도 더 푸는 것이 낫다고 계속해서 되뇌였습니다. 그리곤 3초 정도 멍을 때리며 한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수험장에 가져간 애착인형도 제법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독관께 확인을 받으면 안고 시험을 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로, 제2외국어 응시에 관한 것입니다. 제 모교에서는 제2외국어를 응시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대를 준비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수험 분위기가 좋다는 이유로 제2외국어 응시를 적극 권장하였고, 저는 제2외국어를 신청했습니다만 실제로 응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알아두셔야 할 것은, 제2외국어 응시 포기 각서를 쓰는 것에 제2외국어 시험에 응시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수능 후의 가족식사 예약도 이를 고려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입시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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