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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9살, 갓 입시를 끝낸 내가 컨설턴트가 된 이야기 (3)
안녕하세요! 한국교원대학교 25학번 jseol422 멘토입니다!! 이번 스토리노트에서도 지난 (1), (2)편에 이어 2025년 1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범대학에 재학하며 교사를 꿈꾸고 있는 제가 공교육의 적이라고도 불리는 사교육, 특히 입시컨설팅이라는 일을 하고, 창업까지 하게 된 일화를 전하려고 합니다. 5. 돌고돌아 마음이 향하는 데로다시 한 번 고민했다.또 다시 생기부의 방향성을 바꾸면아무리 내가 탐구를 좋아하고, 수업태도가 좋아도,생기부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과 깊이 때문에절대로 학종을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뾰족한 답이 없어서우선 학생부는 지리교육으로 채우려고 했다.하루종일 선택과목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나에 대한 거짓 소문은 어디까지 퍼졌을지,누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우울과 불안으로 뒤엉킨 학기 초반을 보냈다.그때 내 삶에 나타난 희망이 국어였다.당시 나는 국어교육에 대한 자신은 없었지만,국어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고,고등학교 3학년 한 해 동안국어 수업만 주에 12시간씩 듣는 상황이었다.현대문학감상, 심화국어 두 과목을같은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고,언어와 매체는 3학년부에 계신 다른 샘께서 가르치셨다.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세 과목이 다 좋았다.국어라서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선생님들이 너무 좋으셨다.언어와 매체는 몰랐던 정보를 알고나만의 규칙으로 체화하는 게 좋았고,예외와 규칙이 꽤나 복잡한 바 선생님께 질문을 자주 했는데,처음에는 교과 개념 /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다가학년말에는 선생님과 문법 교육, 교수법, 학생들의 오개념 등을토의하게 될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좋았다.국어교육의 꿈을 되찾는 용기도 선생님으로부터 얻었다.현대문학감상 시간에는 수능 연계 교재 속 현대문학,심화국어 시간에는 수능 연계 교재 속 고전문학을 배웠는데!그 시간은 힐링이라는 단어, 그 이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문학을 공부하는 방법을 처음 배운 시간이었고,문학을 감상하는 방법, 문학 작품을 문제와 연결하는 방법을처음으로 깨닫게 된 수업이라 인사이트도 컸는데,그보다는 문학을 말하시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무 따스했다.그 시간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문학이, 교육이, 국어가 이런 힘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교육과정과 교육평가에 줄곧 관심이 있었던 내게평가원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으신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건 행운이었다.막연하게 연구하고 싶다 / 공부하고 싶다라고만 생각했던교육과정 분야에 대한 꿈을 펼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그때부터 국어, 특히 문법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연구원의 꿈을 꿨다.물론 중등교사가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국어교육의 실제를 경험한 뒤 평가원에서 일하고 싶었다. 6. 현실 앞에서 타협점을 찾다꿈이 생기고 나니 삶은 한결 나아졌다.곳곳에 도사리는 혐오와 폭력 따위로부터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그냥 내가 사랑하는 국어와 교육을 해야겠다고용기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내가 좀 괜찮은 사람 같다며나를 더 사랑하니 남의 말에 덜 휘둘리게 되었다.사실 지리교육을 목표로 했을 때도어릴 때 가졌던 페르소나처럼 페르소나를 만들어교과 선생님을 사랑하듯 연기한 것처럼해당 학문에 진심인 척 삶을 꾸며왔다.그것과 별개로 3학년 1학기 초반에 시작한한국지리 멘토링은 정말 성심성의껏 했었다.덕분에 내가 지리교육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진로를 바꾸려니 담임 선생님의 눈치가 보였다.내 입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시고 관여를 하시는 분이기에.국어교육에 대한 열정만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입시의 관점에서는 손해라는 것을 알기에.내가 가장 목표로 하는 대학의 선배이시기에.그럼에도 지리교육과에 진학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지리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이 학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에.그리고 이걸 가르치는 순간마다내 인생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선생님이 생각날 것 같았다.그 사람과 같은 분야를 공부하고 싶지도 않았다.결국 입시 전략상 절반의 원서는 지리교육과로 썼다.그럼에도 국어교육이라는 목표를 생각하며2장은 국어교육과에 지원했다.국어교육을 할 수 있다면, 학교 서열이 많이 낮아져도 괜찮았다.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음에도 충북에서 교사를 하려면충북에 있는 학교를 졸업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교원대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학점교류 수업이라도 들으러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원서를 구성했다.교원대는 지리교육과로 쓰면 붙을 것 같았다.성적이 엄청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나는 정말로 괜찮은 지리교육과 생기부였고,면접을 잘 볼 자신이 있었으니까.근데 교원대는 모든 전형을 통틀어 한 번밖에 지원이 안 되는 학교였다.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리교육과에 지원하기에는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원서를 더럽히는 느낌이었다.그만큼 고등학교 2학년의 기억이 싫었다.대안은 성적에 비해 과를 낮춰 쓰는 것뿐이었다.고등학교 3학년 시기에 내가 언어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대학에 가서 배우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불어교육과를 택했다.독어, 불어, 중국어 중학습한 적 있는 중국어 대신 불어를 택한 것은수능 최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프랑스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세계사, 통합사회 등을 공부하며 배운 프랑스의 역사적 사건,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의 정신이 인상깊었고,음악시간에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노래를 부르거나,수능 국어 연계교재 학습 중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관심이 생겨공부를 했던 기억,알베르카뫼 등 프랑스인 작가의 작품을 인상깊게 읽었던 경험,공교육의 힘이 강한 프랑스의 교육 문화와 서논술형 시험인 바칼로레아에관심을 가지고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연결하여 탐구했던 시간등 많은 요소가 겹쳐지며 프랑스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국어의 언어체계를 더 잘 이해하고,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혔다. 다음 글은 며칠 후에 업로드하고, 바로 뒤에 적을 스토리노트에서는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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