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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정치/북한학] 북한학 관련 내신 대비& 기초 상식 정리!
안녕하세요! 030 멘토입니당오늘은 북한학 관련 내용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건데요, 모든 자료는 제가 직접 정리하고 추려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자유롭게 보시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실제 시험 문제까지 나온 내용들이니 많은 도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또한 레포트 작성에 있어서도 참고 및 사용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1.북한 외교정책 기조북한 외교정책의 목표는 사회주의 체제 공고화와 생존을 위한 대외관계를 추진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념적 차원의 국가이익을 가장 중요한 외교목적으로 제시하며 외교정책 기조를 자주, 평화, 친선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주성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힘으로 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는 주체사상의 속성으로 독자외교를 추구하며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간섭에 반대하는 것으로, 국가 자주성유지를 위해 강대국의 개입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평화의 일반적 개념은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국제적 협력이 심화된 상태이다. 하지만 북한은 평화를 주체사상에 기초한 수령중심의 당-국가 체제가 세계적으로 정착된 상태라고 주장하며, 평화를 위해 무력 사용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친선 또한 반미정책을 표방하거나 강대국과 군사적 교류가 없는 국가들과만 친선관계를 맺어 반제국주의 확산을 시도하는 형태로 목적성을 띄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친목의 느낌과는 다르다. 2.비핵화 공동선언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란 1992년 한반도를 비핵화하여 평화 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세계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고자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발표한 선언이다. 간략한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핵무기의 제조, 사용, 생산, 보유, 저장 등을 하지 않는다. 핵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 사찰을 실시한다. 이러한 조항들을 통해 남북은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3.유엔 안보리김정은 시기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서일 성능을 개량하기 위한 실험을 지속하고, 미국은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하였다. 2017년 9월 3일 북한은 제6차 핵실험을 진행했고,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주도하에 원유 공급량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정제유 공급량을 감축하며 콘덴세이트 및 LNG 공급을 금지하는 대북 원유공급 제한, 원산지를 무관하고 북한 섬유제품 수출 금지, 해외 노동자 노동허가 금지 등과 같은 내용이 담긴 안보리 결의 제 2375조를 채택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2017년 11월 다시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이에 미국은 대북 유류공급 제한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수출입 금지 품목을 확대하며 해상차단 조치를 강화하는 안보리 결의 제 2397호가 채택되도록 주도했다. 4.판문점 선언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이때 합의 발표한 주요 내용 첫번째는 남과 북은 이미 채택된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고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안에 개최하여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는 것이다. 두번째는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나가는 것이다. 세번째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 북, 미 3자 또는 남, 북, 미, 중 4자회담 개최룰 적극 추진하여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계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가는 것이다. 1.북한의 대남도발1960년대에 북한은 남조선 혁명론에 근거하여 대남전략을 공세적으로 구사하였다. 1968년 1월 21일에 북한군 제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하여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사건으로 7명의 군경과 민간인이 북한의 무장공비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이 사건은 남한에 큰 충격을 주어 남한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향토예비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후 북한의 남파 게릴라 침투에 대비하여 군대 내에 공비전담 특수부대가 편성되었고 전방에는 155마일 휴전선 전역에 걸쳐 철책선을 구축하였다. 이 철책선은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는 냉전의 상징이 되고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이전의 게릴라 침투방식과는 달리 잇따른 폭탄테러를 가하면서 남북관계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악화시켰다. 대표적인 사건이 ‘KAL기 폭파사건’이다. KAL기 폭파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남한에서 제 13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에 의해 발생하였다. 1987년 11월 28일 밤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29일 공중에서 폭파된 사건이었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전원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KAL기를 폭파하라는 북한 지도부의 명령을 받고 김현희 등이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1988년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였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조장했던 갈등과 긴장은 이전과는 또 다른 양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북한은 2010년 3월 26일 잠수정의 기습적인 어뢰공격을 감행해 우리 해군 초계항인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이 사건으로 우리 해군 46명이 희생되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은 대한민국을 공격한 명백한 군사적 도발로서 무력위협과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유엔헌장 제2조 제4항과 일체 적대행위의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협정 제2조 제2항,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무력사용을 금지하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2장 제9조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6.25전쟁, 아웅산 폭파사건, KAL기 폭파사건등이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해왔던 북한은 이 사건도 자신의 소행 아니라고 주장했고, 당시 정부는 5월 24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남북간의 교역과 교류 전면 중단 및 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항해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는 향후 이러한 도발대응 방향으로 팃포탯 전략을 취해야 한다. ‘팃포탯’은 ‘상대가 가볍게치면 나도 가볍게 친다’라는 뜻으로, 팃포탯 전략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처럼 상대가 자신에게 한대로 갚는 맞대응 전략을 말한다. 이는 게임 이론의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으로 밝혀졌다. 이 전략의 원리는 간단하다. 먼저 첫번째 시행에서는 일단 협력하고, 두번째 시행부터는 상대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한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마찬가지로 협력하고, 상대가 배반하면 마찬가지로 배반한다. 그러다 상대가 다시 협력하면, 또 다시 협력한다. 실제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나라의 팃포탯 전략이 통한 사례는 많다. 2015년 8월 1사단 수색대원들이 북한 목함지뢰를 밟고 큰 부상을 입었을 때도 그랬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고사총 한발과 곡사포 세발을 발사했다. 이에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NDL) 북쪽 500m 지점에 155mm 자주포 29발을 쏘자 북한은 대화를 제의했고, 유감을 표명했다. 결국 협력을 통해 자기이득을 최대화하는 전략이 살아남는 것으로, 최상의 협상전략은 협력이다. 2.통일방안남북한은 모두 한반도의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실현방안에서 차이가 있다. 남한의 통일방안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가는 소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다. 자주, 평화, 민주를 기 본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3단계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단계는 화해협력 단계, 2단계는 남북연합 단계, 3단계는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완성 단계이다. 북한은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무력적인 방법을 용인하고 대내외 상황 변화에 따라 그 정도와 내 용에 수정을 가하면서 이른바 '연방제' 를 통일방안으로 추진하여 왔다. 남한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의 공통점은 점진적 통일을 추진 하고, 중간 과정에서 2제도 2정부를 인정하여 남북 각각정치, 군사, 외교권을 독자적 으로 행사하며, 먼저 민족사회 통합 후 제도적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방안은 각기 다른 통일의 미래상 구상 속에 통일의 방식과 국가 결합의 형태로 연합과 연방제를 각각 상정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 북한의 통일안은 구조주의적 접근으로 급진적 성격을 띄며 민족통일보다 국가통일을 우선시한다. 반면 남한의 통일안은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단계적 성격을 띄며 국가통일보다 민족통일을 우선시한다. 북한은 주권을 중앙기구에 이양하며 연방정부가 대외주권을 행사하는 연방체제, 남한은 구성체가 독립적 주권을 보유하는 연합 제도를 가지며 공존 지향적 통합을 추구한다. 이러한 북한 통일방안의 문제점 첫번째는 연방제의 선결조건을 요구함으로써 상대방의 실체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통일 3원칙’의 자의적 해석으로는 주한 미군 철수, 미군의 간섭 배제를 요구하는 자주, 한국의 군사력 현대화와 군사연습 중지를 말하는 평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공산당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민족대단결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 선결조건과 연방구성 원칙 사이에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점이다. 선결조건에서는 상대방의 이념과 체제를 부정하고 연방제의 구성원칙에서는 남북의 사상, 제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하나의 연방 국가를 형성하자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은 연방정부와 지역정부 간의 관계나 구성방법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데 연방 방식으로 통일을 이룬 역사적 사례는 전무하다. 이렇게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주권의 문제에서만 연방의 성격을 갖추고 실질적인 제도나 정책 집행의 측면에서는 국가연합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3.동독서독동서독 통일과 한반도 통일에는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동서독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지만 한반도는 남북한의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쌍방향의 교류 협력의 정도에서 동서독과 남북한은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동서독만큼의 긴밀하고 광범한 교류 협력은 남북한 간에는 없었다. 셋째, 동서독 분단은 2차 대전 패전에 따른 강제분할에 의한 것이었기에 독일 통일은 기본적으로 전승 4개국의 국제적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외교적 문제였다. 하지만, 남북한은 분단 배경에서 국제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결정에 대한 추정은 국제사회의 지분과 권한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동서독 관계에서 핵문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다. 북한의 자체 핵, 미사일 개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핵심적 안보 현안이며 통일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독일 통일 과정에서는 동독 지역으로의 외부 정보 유입이 다양한 방식에서 이루어져 통일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북한의 경우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이 다양한 제한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독일 통일 과정이 남북한 상황과 다를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교훈과 시사점이 충분히 있다. 첫째, 남북한의 통일은 집단안보체제의 강화로 안보불안을 우선적으로 해소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 및 유럽안보협력회의를 통해 안보 불안이 상당 부분 해소 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둘째, 남북간 격차를 완화하고 교류를 활성화하여 한반도 통일국가 체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서독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을 원칙으로 한 일관성 있는 교류를 실현했으며, 이는 기독민주당 콜 총리의 연립정부로도 이어져 독일의 통일을 위한 안정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셋째, 평화통일 교육의 활성화 및 사회통합을 위한 정신적 기반 강화를 통해 국민들의 평화통일 의지를 고양하고 합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서독이 정치교육을 통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 정착,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내적, 정신적 기반을 강화해나가며 분단으로 인한 편견, 불신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우호적 국제 환경을 조성하고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여 주변국가의 한반도 통일 지지를 획득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독일이 통일이 유럽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킬 것임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며 통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남북한 통일에 우호적 반응을 조성해 나가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해당 내용은 북한학을 공부하시는 분들, 역사/정치/외교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다음에도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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