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저 역시 매일같이 수행평가와 내신, 수능 준비에 치이며 공부가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 사회학을 공부하고, 리로스쿨 멘토 활동을 하며 많은 후배들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교육 시스템은 정말 모두에게 공정한 것일까? 그중에서도 특히 수능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험지, 같은 시간’이라는 이유로 가장 평등한 시험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요? 같은 시험지를 받기까지, 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같았을까요? 이 글은 그런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수능이라는 제도를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온 ‘평등한 시험’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간과해온 구조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능은 평등한 시험일까? 매년 11월이 되면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운명을 건 하루'를 맞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은 고등 교육의 관문이자 학생들의 미래를 가르는 중요한 시험으로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시험지, 동일한 시간,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정한 시험',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과연 수능은 진정한 의미에서 평등한 시험일까? 이 글에서는 사교육 의존도와 수능 결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수능이 실제로는 어떤 구조적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수능을 평등하다고 믿게 만드는 요인을 짚어보자. 수능은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문제를 풀고 상대평가로 점수를 부여받는 시험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공정한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형식적 평등'은 현실에서의 '실질적 평등'을 담보하지 못한다. 동일한 문제를 푸는 조건은 같을지 몰라도, 그 문제를 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상위권 대학 합격자 중 다수가 고소득층 가정 출신이며, 강남 3구 등 교육 인프라가 밀집된 지역에서 온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의 신입생 중 상당수는 과거부터 ‘강남 8학군’이나 특목고·자사고 출신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사교육을 받아왔으며, 수능 전 과목을 대비하는 고가의 인강, 학원, 과외 등을 일상처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반면,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 외에 별다른 학습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사교육을 받더라도 제한된 시간과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700만 원 이상인 가정의 자녀는 400만 원 미만 가정 자녀보다 수능 평균 등급이 더 높았다. 특히 국어·수학·영어 등 주요 영역에서의 격차는 뚜렷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이나 학습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자원이 성적 향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컨대 사설 모의고사를 통한 실전 감각 훈련, 인강으로 보완하는 부족한 개념 학습, 전문 컨설턴트의 입시 전략 조언 등은 단순히 ‘공부량’ 이상의 차이를 만든다. 이처럼 사교육은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 간의 ‘출발선’을 달리 만드는 요인이다.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평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자원 역시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교육 자원의 지역·계층 간 격차가 크고, 이는 고스란히 수능 성적과 대학 진학 결과에 반영된다. 또한, 수능이 특정 방식의 사고력만을 측정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문제다. 논리적 사고력과 빠른 정보처리 능력, 문제풀이 훈련을 강조하는 수능 구조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 연습함으로써 고득점을 노릴 수 있게 한다. 이는 사교육을 통해 충분히 훈련된 학생에게는 유리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학습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결국 수능은 겉보기에는 평등하지만, 실제로는 계층 간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불평등의 시험'이 되기도 한다. 물론, 수능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 도구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면접이나 학생부 종합전형처럼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전형에 비해, 수능은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며 일부 비사교육층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사교육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현실 속에서, 수능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수능은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시험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평등하지 않다. 시험지를 받는 순간은 동일하겠지만, 그 시험지를 받아들기까지의 ‘경로’는 학생마다 크게 다르다. 교육은 더 이상 단순히 노력만으로 성과를 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조건과 자원 배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수능의 평등을 논하려면, 시험의 구조뿐 아니라 그 시험을 준비하는 사회적 맥락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교육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수능을 아예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문제입니다.둘째, 그렇다고 모든 전형에서 수능을 배제한다면, 오히려 더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전형이 확대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셋째, 가정환경의 차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또한 반박의 여지도 분명 존재합니다. 일부에서는 "공교육 내에서도 충분히 수능 준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거나, "지금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좋은 성과를 내는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례를 제시합니다. 실제로 수능은 어느 정도 ‘노력의 결과’를 반영해주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회의 공정성은 지켜지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노력의 환경'이 과연 공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과연 모두가 똑같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 학습을 도와줄 사람, 시행착오를 줄여줄 시스템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노력조차 ‘기회의 산물’이라면, 그 노력의 기회부터가 평등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처럼 수능의 공정성은 단순히 시험 그 자체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시험의 형식뿐 아니라, 그 시험을 둘러싼 구조적 환경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하며,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교육 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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