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공부는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재미’라는 감정을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시험이 다가오면 당연히 해야 하니까 하는 거고, 성적은 그저 평가받는 수단일 뿐이었지. 그런 내가 어느 날, 공부가 ‘재밌다’는 감정을 느낀 순간이 있었어. 솔직히 그때는 좀 놀랐어. 나한테도 그런 순간이 오다니.그건 2학년 때였어. 사회탐구 과목 중에 <정치와 법>이라는 과목을 선택했는데, 처음엔 그냥 암기과목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수업 중에 교수형, 사형제도, 표현의 자유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뭔가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어느 날은 ‘명예훼손’ 판례를 수업 시간에 다뤘는데, 말 한 마디가 법적으로 어떻게 판단되는지를 배우면서 “와, 이거 진짜 재밌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 단순히 외우는 게 아니라, 사례를 내 입장에서 판단해보고,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생각이 바뀌는 경험이 신선했어. 나도 모르게 쉬는 시간에도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판례집을 읽고 있었지.그때 처음 알았어.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을 때’**라는 걸. 그냥 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몰입감이었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싶어서 계속 읽고, 비교하고, 정리하는 감각. 마치 게임에서 다음 레벨을 깨기 위해 스스로 전략을 세우는 것처럼 말이야.또 다른 재미는 ‘성장감’이 느껴질 때였어. 수학이 너무 약했던 나는 늘 문제를 풀다 말고 포기하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쉬운 유형 하나라도 스스로 풀어냈을 때, 그 뿌듯함이 생각보다 컸어.특히 함수 단원에서 문제를 반복해서 풀다가 어느 순간 그래프를 머릿속으로 ‘예상’할 수 있었을 때, “나 진짜 이거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감정이 들었어. 그게 마치 퍼즐을 완성하는 기분이었고, 그날부터는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게 조금씩 덜 두려워졌어.그때 알았어. 공부는 완벽하게 잘할 때가 아니라,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될 때’ 재미있어지는 거구나.그리고 또 하나, 혼자 공부하다가 누군가와 공유할 때 오는 재미도 있었다. 친구에게 내가 이해한 걸 설명해줄 때, 그 친구가 “오 진짜 이해됐다!”라고 말해주면 그게 진짜 짜릿했어. 마치 내가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그래서 나중엔 일부러 공부한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친구들한테 보내주기도 했고, 누군가 질문하면 열심히 알려주기도 했어.그 과정에서 내가 뭘 정확히 알고 있고, 뭘 모르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정리됐고, 그게 다시 공부로 이어졌지.이해하고, 정리하고, 설명하고, 공감받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공부가 점점 생활처럼 녹아들었어.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야. 여전히 공부는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 그런데 공부가 전부 괴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마음이 좀 편해졌어.‘아, 오늘은 좀 안 되지만, 언젠가는 또 재미있어질 수 있겠지’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거든. 재미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선물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됐어.그래서 지금 누군가 “공부가 재미없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괜찮아. 아직 재미있는 순간을 못 만났을 뿐이야. 진짜 ‘이건 뭐지?’ 싶은 단원 하나만 제대로 파고들어도 그 순간이 와. 재미는 늘 먼저 오지 않고, 네가 조금이라도 깊이 들어갔을 때 슬며시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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