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1학년, 실제 생활에 대한 산문고등학교 내내 건축을 좋아했다. 디자인과 구조,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스크랩하고, 온라인 설계대회를 알아보고, 독서록도 매달 몇 편씩 정리하면서 언젠가 진짜 건축을 공부하게 되면 상상하던 모든 걸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다. 수능 이전에도, 면접 준비를 하며 내가 얼마나 이 전공을 사랑하는지 진심을 다해 말하곤 했다. 그 긴 준비 끝에 마침내 건축학과 1학년으로 캠퍼스에 들어섰을 때, 작은 흥분과 막연한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동시에 내 어깨에 얹혔다.막상 첫 학기가 시작되면 그 기대감은 금방 현실에 눌리기 쉽다. "건축학과 1학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솔직히 말하면, 학교, 교수, 동기마다 약간씩 분위기가 다르긴 해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1학년 때 엄청난 건축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설계 과제라도 특별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과제를 마감하는 힘과 남다른 ‘아이디어’, 거기에 교수의 취향에 따라 좌우되는 결과물이 평가 핵심이 된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건축 관련 서적을 읽었거나 유명한 건축사조를 파악해도, 1학년 설계 평가 기준은 “이게 신선하다” 혹은 “이건 교수님이 좋아할 만하다” 정도에 머물 때가 많다.현실적으로, 고등학교 때 공부한 건축 지식이 설계 성적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순간은 드물다. 수업에 배운 임스,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언어는 교수의 강의에서 잠깐 인용될 뿐, 우리 과제물엔 결국 "요즘 트렌드"나 "누구 취향에 맞는 톤" 정도로만 반영된다. 최종 평가가 끝나고 나면, 밤새워 준비했던 설명서와 도면은 교수님의 한 마디 조언이나, 더 신박한 아이디어에 순간 휘둘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사전지식보다는 강의실, 스튜디오 안에서 직접 부딪히는 경험, 팀별 멘토링, 교수별 선호 스타일을 눈 밝게 파악하는 게 훨씬 중요하게 느껴진다.가장 많이 체감하는 건 ‘시간 부족’이다. 건축학과 첫 학기는 과제량이 정말 많다. 설계 스케치 하나를 완성하려면 일주일 내내 손에서 연필을 놓을 틈이 없다. 팀 과제, 개별 과제, 드로잉, 모형제작, CAD로 야무지게 다시 그려오라는 재지시, 그리고 매주 반복되는 크리틱(교수/조교 피드백)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웹에서 보는 타 전공 대학생들이 시험 끝나면 스터디카페에서 친구랑 수다 떨며 커피 마시는 사진을 보면, ‘여긴 진짜 다른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밤 11시가 넘어 강의실에서 모형을 붙이고 있을 땐, 잠도 부족하고,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심지어 식사도 걸을 때가 많다.그래서 그런지 건축학과 1학년은 때론 ‘가장 불행한 학과’란 농담을 듣기도 한다. 특히 기숙사 학생이나 자취생 입장에선 과제 마감일에는 침대보다 스튜디오, PC실을 더 많이 들락거린다. 새벽 3시에 겨우 모형 한 단계를 마치고 기숙사로 터벅터벅 돌아가면, 혼자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진짜 이게 맞는 거야?”하지만 그만큼 이상하게도, 재미는 있다. 급하게 쏟아붓는 체력, 피곤에 지친 눈,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 A3 도면, 옆에 있는 동기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툭 던지며 서로 웃는 그 순간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기분을 준다. 힘들고 혼란스럽지만, 내가 뭔가 ‘만드는 것’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 교수님 앞에서 서툴게나마 내 아이디어를 변호하며 맞서는 그 짜릿함이 이 전공만의 매력이다.돌이켜보면,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건축을 정말로 사랑했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공부했다. 유명 건축영화도 찾아보고, 글로리홀과 같은 상징적인 작품들도 스스로 조사해보고, 입시에 도움이 될까 봐 설계 노트도 따로 정리했다. 실제로 건축의 디테일, 용어, 역사는 수능 준비와 별개로, 내 관심의 중심이었다. 학과에 들어온 후에도 첫 학기 설계 과제마다, 내가 알고 있는 건축의 문법, 공간의 흐름, 빛의 각도, 건물의 맥락을 적용해보고자 노력했다.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지식이 1학년 성적이나 교수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수업 시간에 따분하던 아이가 미술 시간 아이디어를 떠올려 신선한 공간을 제시하거나, 드로잉을 좋아해 색감과 선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학생이 더 자유롭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타가 오는 순간이었다.나는 건축 공부를 정말 오래 하고, 화려한 이론과 개념을 외웠는데도 설계 평가는 오히려 ‘감각’이나 ‘새로움’에 좌우되었다. 그때 ‘이게 진짜 대학이구나, 내내 외워 오던 건축 상식보다 더 중요한 게 뭘까?’ 스스로 계속 묻게 됐다.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도 ‘건축공부’만 붙잡고 있지 않았을 거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실제로는 더 많은 디자인, 예술, 그리고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실무적이거나 구조적 배경지식 보다, 오히려 미술(드로잉, 입체, 색채), 다양한 시각예술 분야, 영화, 사진 등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더 기르고, 무엇보다 학교 내신관리를 더 철저히 챙기는 현실감을 가졌을 거다.대입은 여전히 ‘성적’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내내 오로지 건축만 파다보니 가끔 다른 전공 친구들이 학업과 취미, 인간관계를 더 유연하게 관리하는 걸 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큰 틀에서 보자면, 역시 성적·학교 생활 등 밸런스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건축지식, 적어도 1학년 땐 정말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 내 방식으로 풀어내는 표현, 낯선 시선, 유연하게 변주되는 디자인을 더 좋아한다. 현타가 오는 순간이 여러 번 있을 수 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리 열심히 예습하고 예전 설계까지 찾아보고 왔는데 실전 평가는 맥이 안 잡히지?”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얻는 것도 분명 있다. ‘쓸모없는 지식’이란 절대 없다. 다만 1학년엔 그게 직접적으로 바로 점수, 평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결국 1학년 건축학과 생활은, 진짜로 새로운 세상에 부딪히고 몸으로 연습하는 연속이다. 밤을 새운 만큼, 실패하는 만큼, 동기와 부대끼고, 교수님 지적과 칭찬에 웃고 울며, “나는 아직 부족하다” 느끼면서 조금씩 나만의 감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이다.만약 지금 누군가 건축학과에 입학하려 하거나, 1학년을 준비 중이라면, 너무 이론, 구조, 배경지식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 느낌, 관점,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면 좋겠다.그리고 입시가 끝나고 처음 맞이하는 대학 첫 학년. 힘들고, 바쁘고, 남들보다 놀 시간은 부족할지 몰라도, 여전히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그 현타, 그 시행착오의 반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은 진심―이 모든 게 바로 건축학과 1학년이 경험하게 될 현실이다.만약 다시 돌아가도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이제는 좀 더 여유 있게, 더 다양한 시선으로 건축을 받아들이라 조언하고 싶다.이만큼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배우면서 결국 건축이 내게 남긴 건, 단순한 건축지식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힘”이었다.그게 바로 건축학과 1학년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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