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는 커피를 잘 못 마셨어. 속도 쓰리고, 잠도 안 오고, 손까지 떨려서 웬만하면 피했지. 그런데 고3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모의고사와 수행평가, 기말고사 일정이 겹치면서 하루가 정말 쉴 틈 없이 흘러갔거든. 자율학습 시간 끝나고 집에 오면 자정은 기본이었고, 새벽까지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어. 눈은 감기는데 공부는 안 끝났고, 그런 날 친구들이 한 손에 들고 있는 게 에너지 드링크였어. 빨간색, 파란색, 심지어 검정색 캔까지. 처음엔 그냥 보기만 했는데, 어느 날 나도 한 캔 사서 마셔봤어. “진짜 효과 있나?” 반신반의하며.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꽤 인상적이었어. 약간 톡 쏘는 탄산에 정신이 번쩍 들고, 속이 차가워지는 기분과 함께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지. 그날은 이상하게 덜 졸렸고, 단어 암기도 빠르게 되고, 집중도 잘 되는 것 같았어. ‘이거 진짜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 시험기간마다 거의 습관처럼 마시게 됐어. 특히 고사 전날엔 필수품처럼 들고 다녔지. 친구들끼리 “이번엔 뭐 마셨어?” 하며 서로 캔 디자인과 이름을 비교하는 게 일종의 문화처럼 되기도 했고.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어. 에너지 드링크를 자주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마셔야 ‘공부할 준비가 된 느낌’이 드는 거야. 안 마시면 불안하고, 마셔야 집중이 될 것 같았지. 근데 신기하게도 점점 효과가 줄어들었어. 처음처럼 각성되는 느낌은 점점 약해지고, 오히려 심장은 빨리 뛰는데 머리는 멍한 상태가 되곤 했어. 그때 깨달았지. ‘이거, 약간 중독 같은데?’ 뇌가 깨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자극받는 느낌? 피곤은 누적되는데, 각성만 남는 그런 이상한 상태였어.그래서 성분을 찾아봤어. 대부분의 에너지 드링크는 카페인, 타우린, 당분이 핵심이었어. 카페인은 익숙하지만, 타우린은 근육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성분이고, 당분은 즉각적인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혈당을 급격하게 올렸다가 금세 다시 떨어뜨리지. 문제는 이게 ‘순간적인 각성’이지, 지속적인 집중력 향상은 아니라는 거야. 게다가 카페인 함량이 커피보다 훨씬 높은 경우도 있어서, 마시고 나면 손 떨림, 가슴 두근거림, 심한 경우엔 구토감까지 오기도 했어. 그때부터 조금 무서워졌어. 이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구나 싶었지.특히 가장 심각했던 건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된다는 거였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일시적으로는 눈이 말똥해지지만, 그건 억지로 눈을 뜨게 하는 거지, 뇌가 진짜로 집중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거든. 몸은 피로가 쌓이고, 뇌는 계속 과열된 상태로 돌아가. 결국 다음 날 더 지치고, 다시 그걸 마셔야 겨우 버티는 악순환이 생기는 거야. 루틴도 흐트러졌어. 공부 시간 자체는 늘어났지만, 질은 오히려 떨어졌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고. 일시적인 효과에 의존하면서 루틴 자체가 무너지는 거였어.결국 나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에너지 드링크를 끊기로 결심했어. 대신 수면 시간 확보와 자연스러운 루틴 조정으로 바꿨어. 아침엔 햇볕 받으며 잠깐 걷기, 점심 직후엔 15~20분 정도 눈을 감고 쉬기, 그리고 밤엔 자기 전에 핸드폰을 멀리 두고 스트레칭하면서 뇌를 진정시켰지. 물론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컨디션이 확연히 달라졌어. 무엇보다 피로가 덜 누적되고, 다음 날 머리가 맑았어. ‘이게 진짜 깨어 있는 상태구나’ 싶었지.지금은 누가 “에너지 드링크 마시면 공부 잘돼?”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단기적으로는 도움될 수 있어. 근데 그건 벼랑 끝에서 매달리는 손잡이일 뿐이야. 오래 매달릴 수는 없어. 진짜 집중은, 몸이 스스로 리듬을 찾는 데서 와. 그리고 그 리듬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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