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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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영여자고등학교 안지웅 선생님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 독서기록장을 배부해 준다. 그리고 이 독서기록장에 기록된 서평이나 독후감 등을 증빙서류로 제출해야, 관련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입력해 준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서기록장을 다 써서 한 권 더 받으러 오는 학생들도 있었고, 잃어버렸다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받을 수 있냐고 질문하는 학생도 꽤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독서기록장을 잔여분으로 갖고 있기도 했다. 헌데, 요새는 1년에 1~2권 정도의 여분이 다시 배부될 뿐이다. 그것도 전입해 온 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전에는 학생들이 학생부 속 자신이 읽은 도서 목록을 짚어가며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를 묻고, 학부모는 “혹시 빠진 분야는 없을까요?”라며 걱정했다. 「서울대학교 권장 도서 100선」은 서울대생보다 고등학생들이 더 많이 찾아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간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에서 인기 있었던 ‘사피엔스’라는 난해한 책을 고1 학생이 끙끙거리며 읽는 경우도 자주 목격했다. 적어도 희망 전공과 관련된 책들의 목록이 학생부에 입력되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이었다. 의대를 희망하면 생명과학 관련 책을, 경영학과를 희망하면 경제·경영 서적을 채워 넣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학생부의 독서활동상황이 도서 목록을 기준으로 대학에 제공됐으니, 독서는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비교적 입학사정관 눈에 명확히 보이는 활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목록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렇게 독서활동상황이 대학 제공 자료에서 빠지면서 분위기가 꽤 달라졌고, 학교 현장에서도 그 변화는 금방 느껴졌다. 책을 읽는 학생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 독서는 입시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다. 상담을 하다 보면 “차라리 책 읽을 시간에, 독서기록장 작성할 시간에 다른 활동을 더 하는 게 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는, 독서의 중요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학생의 독서활동이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세특)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독서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정작 학생부를 오래 읽어본 입시 담당 교사일수록 독서의 영향력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깊숙이’ 들어갔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읽은 책 제목이 학생부에 목록으로 남았다면, 지금은 독서를 통한 학생의 사고 과정이 어땠는지 그 사고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탐구 과정에 남고, 발표 방식에 남고, 세특에 남으며, 면접 답변에도 남는다. 학생부 전체의 ‘결’과 ‘질’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를 꾸준히 해온 학생들의 학생부는 묘하게 다르다. 세특 몇 줄만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수업 내용을 단순히 정리하고 예습, 복습을 하거나 질문을 자주 했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자기 질문으로 이어가며,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을 다른 분야와 연결해 바라본다. 소위 ‘간학문적 연계’를 하는 것이다. 발표를 해도 단순 요약이 아니라 자기 해석, 자기 탐구가 들어간다. 굳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독서를 많이 한 학생’, ‘책벌레’ 등으로 입력되어 있지 않아도, ‘학습 과정에서의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탐구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따른 능동적인 독서를 하는 학생’, 즉 ‘볼매’(볼수록 매력적)라는 게 느껴진다.
반면, 활동은 많은데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학생부도 많다. 탐구도 했고 발표도 했는데 활동들이 각각 따로 논다. 왜 이 주제를 하게 됐는지 맥락이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을 열심히 산 건 분명한데, 이 학생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학습하고 탐구하는 사람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별 매력이 안 느껴진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를 읽을 때 보이는 학생들 간의 차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독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평가 방식’이 바뀌었다
독서활동상황이 대학에 제공되지 않게 되자 많은 학생들이 독서를 사실상 ‘비효율적 활동’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외부 봉사활동을 평가하지 않으니, (승인된 교내 프로젝트형 봉사활동은 입력 가능한데도) 봉사활동 경험이 급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학이 내놓는 자료들을 보면 학생들의 방향은 정반대에 가깝다.
서울대학교는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자료에서 꾸준히 ‘지적 호기심’과 ‘자기주도적 학습 경험’을 강조해 왔다. 관심 분야에 대한 독서, 글쓰기, 탐구활동 등을 학업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설명한다. 건국대·경희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 기준’에서도 같은 맥락이 보인다. 탐구력은 독서활동과 연구 활동 등을 통해 심화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중요한 건 대학이 책 제목 자체를 평가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무슨 책을 읽었는가?’보다 ‘읽은 내용이 어떻게 해당 학생의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졌는가?’를 본다.
서울대의 안내 자료를 보면, ‘단발성 활동보다 수업·독서·탐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계기로 관심을 넓혀 갔는지를 본다는 의미다. 공개된 합격 사례들을 봐도 비슷하다. 한 학생은 생명과학 수업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배우다가 관련 교양서를 찾아 읽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생명윤리 문제로까지 연결했다. 관심이 확장되어 간 것이다. 수행평가에서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장기이식과 유전자 조작의 경계 문제까지 고민하게 됐고, 이어진 발표에서는 ‘기술 발전보다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전공 관련 책 몇 권을 읽은 수준이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질문이 계속 깊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경제 수업에서 ‘소비와 또래 문화’에 관한 내용을 배우다가 ‘사람들은 왜 남과 비교하면서 소비할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다. 이후 행동경제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 비교’ 개념을 접했고, 나중에는 SNS 사용과 소비 행동의 관계에 관심이 생겨 SNS 계정을 뒤져 특징을 정리하고, 직접 주변 친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진행했다. 학생부에는 여러 활동이 기록됐지만, 시작은 학습 과정에서의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책 한 권의 독서활동이었다. 다양한 입시 전문기관의 안내 자료에서도 이런 합격 사례의 패턴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정 활동 자체보다 그 활동에 이르게 된 질문의 과정이 더 중요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세특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차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부를 읽다 보면 독서 여부는 세특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서를 꾸준히 한 학생의 세특에는 교과서 밖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사실 교육과정에서 제시하지 않은 내용을 학교 수업에서 직접 다루기 어려운 환경에서, 세특에 교과서 밖 개념에 대한 학습을 언급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이 학습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확장해 스스로 찾아 읽고 탐구한 것 자체를 학종 평가에서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은 내용을 찾아 연결하거나, 다른 교과와 엮어 질문을 던진다. 교사가 설명하지 않은 개념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흔적도 보인다. 한 예로, 사회문화 과목 세특에서, 플랫폼 노동 문제를 다룬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배달 노동 증가 현상에 관심을 가졌는데, 노동사회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플랫폼 구조 자체의 문제를 이해하게 됐고, 나중에는 알고리즘과 노동 통제 문제까지 탐구를 확장했다. 발표 내용도 단순한 현상 정리가 아니라 ‘기술의 효율성과 노동권 보호가 충돌할 때 사회는 어떤 기준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요즘처럼 AI의 발달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할 때나,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KOSPI 하락과 연결해 받아들이는 오늘날에는 사고가 여기까지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독서 기반 사고가 얕은 학생부는 활동이 많아도 개별 활동들이 서로 분절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뭔가를 궁금해 했고, 탐구활동도 했고, 발표도 했으며 보고서도 제출했는데, 왜 그런 탐구를 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학생들이 말하는 ‘스펙 느낌’이 나는 학생부는 대부분 이런 경우다. 그동안의 칼럼을 통해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입학사정관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학생부는 활동 수가 많은 게 아니라, 해당 학생의 탐구적 자세, 사고의 흐름이 읽히는 학생부다.
대입은 독서를 더 중요하게 만들 것이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 체제가 5등급제로 개편되었다. 기존보다 같은 등급 안에 훨씬 많은 학생이 포함되는 구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관련 연구 ¹ 에서도, 궁극적으로 정성평가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부 안에서 드러나는 학업의 깊이와 탐구의 맥락을 이전보다 더 세밀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주요 대학들이 정시에서도 학생부 반영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는 이미 정시에서 학생부를 활용하고 있고, 고려대와 연세대 역시 반영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학생부는 이제 수시 지원자만의 자료가 아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탐구 중심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가 훨씬 강조되고 있다. 수행평가도 단순 결과 제출보다 질문 생성과 탐구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의 대입은 단순히 많이 아는 학생보다, 읽고 생각하고 연결할 수 있는 학생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 기반에 독서가 있다는 것이다.
¹ 2028 대입제도 개편에 따른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방향, 조원기 황우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25)
대학은 ‘생각해 본 학생’을 찾는다
학생과 학부모가 자주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전공 관련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전공 탐색 독서가 중요한 건 맞다. 그리고 적어도 이전엔 그랬었다. 다만, 실제로 높게 평가받는 학생들, 실제로 학종으로 합격한 학생들은 특정 분야 책만 반복해서 읽은 학생들과는 조금은 다르다.
의학 계열을 희망하면서 생명과학 책만 읽는 학생보다, 의학과 윤리·통계·사회 문제를 함께 연결할 수 있는 학생이 훨씬 입체적인 능력을 가진 학생으로 보인다. 의사라고 하면 병만 잘 고치면 된다는 것을 넘어, 치료의 과정에서 필요한 ‘의료 윤리’라는 것이 꽤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학과를 희망하면서 경제 원론만 읽는 학생보다, 소비 심리나 데이터 분석, 사회 구조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 본 학생의 탐구가 더 깊어진다. 주요 대학들의 합격 사례들을 보면 이 점은 꽤 일관되게 나타난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되, 그 과정에서 다른 분야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과정에서 독서는 거의 필수이고, 이 과정에서의 독서는 더더욱, 지식을 쌓는 활동이라기보다 사고의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보를 얻는 건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빠진 상태에서, 요약도 해 주고 정리도 해 준다. 다만 글을 통해 얻은 정보를 소위 ‘안다’고 해서 생각이 깊어지는 건 아니다. 그 흔한 ‘쇼츠’를 통해 얻은 정보로 생각이 깊어지지는 않는다. 사고의 과정이 능동적이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짧거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운전자들은 알겠지만, 내비게이션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종이로 된 지도책을 볼 일이 없었다. 매우 편리해졌고, 대중성도 가지게 되었지만 글쎄, 지도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그 찰나의 시간이라도 ‘사고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대입, 적어도 학종에서는 독서를 생활화하고, 읽은 내용을 자기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다른 문제와 연결할 수 있는 힘, 그게 지금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이 학종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결국 그런 학생일 것이다. 정해진 답을 빨리 찾는 학생보다, 질문을 오래 붙들고 생각해 본 학생, 그 과정에서 책을 능동적으로 찾아 읽고 사고하며 연결하는 그런 학생이, 학문을 통해 성장하고 종국에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가 된다는 것, 그리 복잡하지 않은 원리이다.
참고 자료
교육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개선 방안」 및 2025학년도 대입제도 반영 사항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학생부종합전형 안내」(2025·2026·2027학년도)
건국대·경희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
한국교육과정평가연구원(2025), 「2028 대입제도 개편에 따른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방향」
베리타스알파, 서울대 학생부종합전형 및 합격생 사례 분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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