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습자 맞춤형 교육과정?

2024.12.06 196명이 봤어요

 

충남삼성고등학교 양병문 선생님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서에서는 ‘학습자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적성과 진로에 따른 선택학습의 강화를 강조하며 선택 교과목의 다양하고 탄력적인 운영에 초점을 맞추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시 학생들의 주도적인 진로 설계와 이에 적합한 맞춤형 학습을 적절한 시기에 지원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과정 편제를 중시하고 있다.” 과연 학교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원하는 방향대로 ‘학습자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번 주제에서는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습자 맞춤형 교육 실현을 저해하는 요인을 알아보고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학교는 학생의 모든 과목 개설 수요를 반영할 수 없다. 

 

 학교에서 개설하는 과목은 크게 ‘지정 과목’과 ‘선택 과목’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지정 과목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반드시 수강하도록 정하여 개설한 과목이고, 선택 과목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설한 과목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과목을 적절한 시기에 선택하여 이수하기를 권장한다. 심지어 공통과목조차 수학 교과의 경우는 공통수학과 기본수학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영어 교과의 경우는 공통영어와 기본영어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할 만큼 학생의 자발적인 과목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습자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 지정 과목의 비율은 줄이고 선택 과목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교가 지정 과목을 일정 정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방향에 따라 학생이 특정 과목을 수강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는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교육과정의 방향에 따라 ‘정보’ 교과를 학교의 지정 과목으로 편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학생이 학습의 기초인 언어·수리·디지털 기초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하여 학교 교육과 평생 학습에서 학습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은 2022 개정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학교의 모든 학생은 ‘정보’ 과목을 지정 과목으로 수강하고 디지털 기초 소양을 쌓을 수 있다. 한편, 학생들이 수능을 많이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교에서는 수능 관련 과목을 모두 지정 과목으로 편성해 학생들의 수능 준비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예시들 이외에도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싶은 교과나 특정 과목이 있다면 학교는 그것을 지정 과목으로 편성하고 모든 학생이 수강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학교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이다. 2023년 2월에 교육부에서 발행한 《고교학점제 도입 운영 안내서》에서는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학교의 변화 모습으로 학생들이 교과 영역 구분 없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고,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 개설 수요를 파악하여 운영하기를 기대한다. 학교는 학생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지정 과목을 최소화하고 선택 과목 수를 늘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분반 수 증가로 인한 교사의 시수 증가, 담당하는 과목 수의 증가, 학기별 수업 시수의 불균형 등 학교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모든 학기에 모든 과목을 폭넓게 개설하기는 어렵다. 

 

 학생은 이상적인 길과 현실적인 길을 놓고 고민한다.

 

 이번에는 학생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학생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많은 과목이 학기마다 개설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학생은 자신의 진로에 적합한 진로 선택 과목을 늦게 수강할수록 유리한 내신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표1>을 참조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학생 A는 공학계열 중 화학공학과 진학을 희망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 물리학Ⅱ, 화학Ⅱ 등의 과목을 학기마다 한 과목 혹은 두 과목 정도를 수강할 것이다. 그러나 2022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성을 충실히 따르는 학교에서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과목이 학기마다 개설될 것이며, 학생이 원하는 학기에 과목을 수강하게 될 것이다. 학생 A는 공통과목 수강이 끝나는 2학년 1학기에 어떤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자신이 정한 진로대로 2학년 1학기에 물리학, 화학을 수강하고,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2학기까지 역학과 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물질과 에너지, 화학 반응의 세계 등의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강하는 학생들은 주로 자신의 진로가 확고하고 상위권에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상대 평가가 존재하므로 내신 등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학생 A가 한 학기만 아직 진로가 확실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거 수강하는 과목이나 ‘과학의 역사와 문화’, ‘융합과학 탐구’처럼 상대 평가를 하지 않는 과목을 수강하고, 다음 학기부터 원하는 과목을 수강해 나간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학생 A는 상위권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의 내신을 받기가 수월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학생 A만 위의 내용과 같은 생각을 했다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학생 A만 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로에 맞는 수강 과목 신청’과 ‘높은 내신 등급 확보’ 사이에서 학생들은 고민하게 된다. 학생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결정으로 ‘진로에 맞는 수강 과목 신청‘을 선택했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높은 내신 등급 확보‘ 쪽으로 의견을 결정한다면 매 학기 자신의 진로에 따른 과목 수강을 하기보다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어떤 과목을 듣는지에만 신경을 쓰는 등의 눈치 싸움에 급급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들을 피해 수강 신청을 하거나, 수강 인원 수가 많은 과목을 신청하게 될 것이다. 이는 원래 ‘진로에 맞는 수강 과목 신청‘을 했던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해당 과목의 수강자 수가 줄어들고, 이는 내신 등급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성과 진로에 맞게 수강 신청을 하는 학생은 매우 줄어들 것이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원하는 취지와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현실을 선택한 학생은 죄가 없다.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교육자들의 몫.

 

 위의 예시에 따르면 학생 A는 ‘진로에 맞는 수강 과목 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학생 A를 비난할 수 없다. 학생 A는 비록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택했을 뿐이다. 학생 A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매체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대부분의 과목을 상대 평가하기 때문에 2028학년도 대입은 내신 등급이 입시의 당락을 가르는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학업 역량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업 역량은 내신 등급과는 다르다. 학업 역량은 교과 공부로 만들어 낸 수치 이외에도 탐구활동, 동아리 등을 통해서도 평가할 수 있다. 학생이 기록한 내신 등급을 떠나 문제해결 능력이 우수하고 도전 의식이 높은 학생이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학생들은 내신 등급을 잘 받기 위하여 적성과 진로에 반하는 과목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재를 만드는 방법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역량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은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그려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다. 학생은 진로를 설계함과 동시에 수강 과목을 정해야 하는데, 학교마다 모두 같은 과목을 개설하고 운영하지 않는다. 즉,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각 학교의 개설된 과목을 참고해 학교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연간 각 6학점으로 운영하는 리로고가 있다. 그런데 교육과정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를 제외한 사회 교과와, 과학 탐구 실험을 제외한 과학 교과를 3년간 총 8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인문, 사회 분야를 희망해서 국어, 영어, 사회 교과만 수강하고 싶더라도 과학 교과를 추가로 2학점 이상 의무 수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수학, 과학 분야를 희망해서 수학, 과학 교과만 수강하고 싶더라도 사회 교과를 추가로 2학점 이상 의무로 수강해야 한다. 

 

 이 학교에서 사회, 과학 과목을 고르게 수강하여 융합적인 역량을 키우고 싶었던 학생 A에게는 리로고의 교육과정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 과목을 최대한 많이 듣고 싶었던 학생 B는 이 학교를 선택했을 경우, 통합사회, 한국사 과목을 수강하는 것만으로는 사회 교과의 필수 이수 학점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즉 통합사회, 한국사 이외에 사회 교과목을 추가로 수강해야만 졸업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자신이 수강하고 싶었던 과학 교과 한 과목을 포기하고 사회 교과를 수강해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학생 B는 리로고를 선택하는 것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편, 지구과학 분야로 진로를 정한 학생 C는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에서 지구과학 과목을 개설하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입학하고자 하는 학교가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만 개설하고 있다면 학생 C는 해당 학교 선택을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물론 공동 교육과정을 포함한 여러 방면으로 지구과학 관련 과목을 수강할 수는 있겠지만, 학생 C에게는 정규 수업으로 수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학교에서 적성과 진로를 어느 정도 찾은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 전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의 편제표를 꼭 참고해야 한다. 편제표를 보면 해당 학교에서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을 알 수 있다. 학생의 진로가 이미 구체화 되어있다면, 해당 학교에서 듣고 싶은 과목이 어떤 학기에 개설되는지도 알 수 있으므로 고등학교 생활을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교육 당국에서 학생이 그린 설계가 현실이 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비로소 “학습자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