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처음 ‘건축학과’를 꿈꾸기 시작하는 순간, 머릿속에는 거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나 멋지게 설계된 집, 혹은 유튜브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유명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정작 건축을 공부하고 그 길을 걷는 삶을 상상해보면, 현실은 기대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나 역시 비슷한 꿈을 꾸었고, 수많은 밤을 고민과 질문 속에서 보냈다. 지금 건축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면, 화려한 외형 이면의 진짜 건축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고 싶다.건축학과에 진학한다는 건, 단순히 실기시험을 잘 보고, 평면도를 잘 그리는 기술을 익힌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축은 수학과 과학의 논리, 예술적 감수성,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서로 손잡는 종합적인 학문이다. ‘멋진 건물 하나 지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도 좋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주제를 파고들고, 도면 수십 장을 그리고, 자신이 예상한 것의 열 배, 백 배를 설계실에서 고민하는 순간도 분명 찾아온다.가장 먼저, ‘나는 왜 건축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남들이 보기엔 멋져 보이는 직업, 혹은 부모님이 추천해서, 취업이 보장된다는 식의 막연한 이유라면 중간에 놓아버리고 싶어질 수도 있다. 실제 대학의 건축학과는 매일 도면 작업과 모형 제작, 교수님과의 끝없는 피드백, 때론 밤을 새야 하는 설계 과제 등으로 하루가 빡빡하다. A1 크기 도면을 들고 새벽 지하철을 기다리는 일도, 설계실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상하지 않다.그래도 계속 이 분야가 좋다면, 그냥 막연히 ‘멋있어서’가 아닌, 한 번쯤 본인이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 건축가들의 삶이나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깊이 호기심을 가져보자. 현실을 알고 출발하는 것과, 환상만 가지고 떠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공부를 시작한다면, 주변 세상을 새롭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보라. 단순히 유명 건축물 사진을 모으기보다, 내가 다니는 학교, 동네의 상가, 심지어 지하철역 벤치 하나까지 ‘왜 저렇게 생겼을까?’, ‘사람들은 저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고민하는 눈이 중요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머무르고, 걷고, 쉬고, 다시 일어나는 순간마다 어떤 공간이 일상을 편하게 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만드는지 주목하다보면, 자연스레 ‘건축가적 시선’이 성장한다.건축학과 입시는 타 학과와 조금 다르다. 대부분 실기 시험, 혹은 건축적 소양 및 사고력을 평가하는 서류 전형이 많다. 실기에 자신이 없다면 미리 기초 드로잉, 투시도, 스케치 등을 연습해두는 게 도움이 된다. 다만, 기교나 기술력 못지않게 ‘창의적인 질문’과 ‘공간적 상상력’이 평가받는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자기 생각을 그림이나 말로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한 가지 질문에 다양한 답을 제시할 줄 아는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대학에 들어가면 상상보다 더 치열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한 학기에 몇 번씩 끝없이 바뀌는 설계 주제와 제출, 일주일에 몇 번씩 자정이 넘는 수정 작업, 긴 시간을 들여 고민해도 교수님 한마디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날이 적지 않다. 이럴 땐 뚜렷한 동기와 인내, 그리고 동료들과 교류하며 버틸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 힘이 나온다. 소통 능력은 도면과 모형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룹으로 과제를 해보는 기회가 많으니, 협업과 타협, 때로는 리더십까지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그래도 건축을 공부하는 최고의 매력은, 직접 만든 설계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종이 한 장, 모형 하나에 머문 아이디어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아무리 힘든 밤에도 다시 책상에 앉게 만드는 동기다. 입시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스스로 ‘세상에 어떤 공간을 남기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라.책을 많이 읽어보는 것도 좋다. 전문 이론서보다는 공간, 건축, 인간, 사회, 예술에 대한 다양한 에세이나 발언들을 훑어보면, 내 안의 세계관이 자란다. 건축가는 현실의 물리적 한계와 예산, 행정적 제약 속에서도 ‘꿈’을 어떻게 기술로 실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다.건축학과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언젠가 내 손으로 설계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만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짧게나마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내 공간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지 한 번은 적어보자.그리고 기억하자.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하고, 공부하는 습관”이야말로 결국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첫걸음이다. 시험성적, 실기 점수, 화려한 작품집보다도, 이 길을 오래 걸을 수 있게 만드는 내면의 힘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세상이다.마지막으로 조언한다. 남의 시선과 환상에 흔들리기보다는, 건축이라는 분야가 가진 깊이와 넓이에 천천히, 그리고 솔직하게 다가가길 바란다. 그 길이 쉽지는 않아도,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직접 상상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건축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떨리는 마음, 불안한 고민, 때로 찾아오는 회의감까지도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라 말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상상한 세상의 첫 도면을 그리게 될 너 자신에게, 오늘의 작은 관찰과 기록이 큰 자산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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