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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매거진 소개

어서와~고교학점제는 처음이지②_서강대학교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026.01.05 433

용화여자고등학교 이영선 선생님

 

 

<자료 1> 서강대학교 모집단위별 권장 이수과목 공문

 

 대한민국 교육 생태계는 현재 거대한 지각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2025년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을 앞둔 시점에서, 최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교육부가 전국 일반고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가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으나, 현장 교원 단체들의 조사에서는 90%에 육박하는 부정적 응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명한 온도 차이는 제도의 ‘지향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와 ‘평가 공정성’에 대한 현장의 불신이 여전히 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갈등은 고교학점제가 단순한 학사 운영의 변화를 넘어 대입 평가 체제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서강대학교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 모집단위별 권장 이수과목 미제시’ 방침은 입시 현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를 필두로 한 주요 상위권 대학들은 전공 적합성을 강조하며 고교 단계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핵심 과목들을 지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서강대는 이러한 관행을 깨고, 대학이 정한 리스트가 아닌 학생 스스로가 설계한 교육과정 자체를 평가의 본질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2015 및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자기주도적 인재상에 대한 대학 측의 가장 강력한 응답이자, 고교 교육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실험적 시도입니다. 본 칼럼에서는 이러한 서강대의 결정이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분석하고, 학교와 교사, 그리고 수험생이 취해야 할 입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서강대의 이번 결정은 교육과정의 변화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의 기초를 닦았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를 완성하고 ‘학생 개별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단계입니다. 기존 2015 과정에서는 공통 과목 이수 후 선택 과목이 제한적이었으나, 2022 과정은 융합 선택 과목을 신설하고 학점 기반의 졸업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서강대의 ‘권장 이수과목 미제시’ 원칙은 이러한 교육과정의 유연성을 대입에 적극 반영한 결과입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교 밖 교육’의 학점 인정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학교 내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이라도 공동교육과정이나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이수한 학생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학이 단순히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결과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배우려 노력했는가’라는 과정 중심의 시각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내신 5등급제 및 통합형 수능 체제와 맞물려, 내신 등급의 변별력이 약화된 자리를 학생의 주도적인 과목 선택 서사로 채우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서강대의 ‘권장 이수과목 미제시’ 원칙은 단순히 과목 지정을 없앤 것이 아니라, 고교학점제의 철학적 가치를 대입 전형에 완벽히 이식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첫째, 이는 학생의 ‘학습 설계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입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맞춤형 교육’을 핵심으로 합니다. 서강대의 방침은 학생들이 대학이 제시한 정답지(권장과목)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억누르는 현상을 방지합니다. 대신, 왜 그 과목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동기’와 그 과정에서 거둔 ‘질적 성장’에 집중함으로써, 192학점이라는 방대한 학습 과정을 학생의 고유한 서사로 변모시킵니다.

 

 둘째, 교육 인프라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하는 공정성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간 권장 이수과목 제도는 소규모 학교나 농어촌 학교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었습니다. 특정 심화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학교의 학생은 지원 단계에서부터 심리적 위축을 겪어야 했습니다. 서강대의 결정은 학교 여건에 따른 유불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대학의 의지입니다. 이는 학교 내 개설 과목뿐만 아니라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지역 연계 위탁 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거친 학생들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주어진 환경에서의 최선’을 평가하는 진정한 의미의 고교 연계 전형을 지향합니다.

 

 셋째, 대학 평가 시스템의 고도화를 통한 변별력 확보입니다. 서강대는 모집단위와 무관한 과목 선택을 허용하면서도, 평가 과정에서는 학생이 제출한 모든 데이터(과목별 성취도, 원점수, 과목 평균, 수강자 수, 성취도별 분포비율 등)를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는 특정 과목 이수 여부라는 단편적인 잣대보다 훨씬 정교한 평가 방식입니다. 대학은 학생의 성취 수준뿐만 아니라 해당 과목의 난이도와 수강 집단의 특성까지 고려하여 학생의 실질적인 학업 역량을 판독합니다. 결과적으로 리스트의 부재는 평가의 약화가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맥락적 평가’로의 진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입 현장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우려와 위험 요소는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예측 가능성의 하락’입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명시적인 권장 과목 리스트는 일종의 안전한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다수의 상위권 대학들이 여전히 전공 기초 과목 이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서강대만 다른 신호를 보내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정보력이 부족한 집단일수록 이러한 모호함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결국은 사교육 컨설팅에 의존하여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과목 조합’을 찾는 비효율적 경쟁에 내몰릴 우려가 있습니다.

 

 둘째, ‘숨은 필수 과목’에 대한 불신과 공정성 논란입니다. 대학이 공식적으로는 미지정을 발표했지만, 실제 서류 평가 과정에서 전공 기초 과목을 이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역량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남습니다. 만약 평가 결과가 결국 심화 과목 이수자에게 유리하게 귀결된다면, 대학의 발표는 수험생을 기만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공교육 현장의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다시금 등급 따기 쉬운 과목이나 보여주기식 과목 개설로의 회귀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학교 간 개설 격차의 책임 전가 문제입니다. 권장과목 목록이 존재할 때는 학생들이 학교에 해당 과목 개설을 요구할 명분이 있었으나, 미지정 체제에서는 이러한 요구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학생의 과목 선택 결과는 학교의 개설 의지와 역량에 전적으로 좌우되게 되며, 이는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을 더욱 은밀하고 견고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대학이 “학교 여건을 고려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선발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취의 차이를 무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서강대의 이번 발표를 ‘데이터 중심의 입체적 평가’로의 완전한 전환으로 해석합니다. 대학이 받는 나이스(NEIS) 자료에는 과목 이름뿐만 아니라 매우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은 학생이 선택한 과목의 ‘위계성’을 먼저 살핍니다. 수학Ⅰ, Ⅱ를 거쳐 미적분이나 경제수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논리적인지를 봅니다. 권장 목록이 없다는 것은 이 위계성을 대학이 정해주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의 기록은 평가의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서강대는 단순히 ‘무엇을 했다’는 나열보다, 과제 수행 과정에서 학생이 보여준 지적 집요함과 문제 해결 능력을 추출합니다. 예를 들어, 탐구 보고서를 작성할 때 사용한 참고문헌의 수준, 실험 설계의 정밀도, 그리고 실패했을 때 가설을 수정하여 재도전한 기록 등이 평가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대학은 이제 ‘과목 리스트’라는 껍데기를 버리고, 학생의 학생부 곳곳에 스며있는 ‘학업적 진정성’이라는 알맹이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고등학교는 교육과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합니다. 학교는 이제 대학별 입시 신호를 분석하여 학생들에게 ‘다중 시나리오 기반의 교육과정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서강대와 같이 자율성을 중시하는 대학과 타 상위권 대학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추출하고, 그 위에 학생 개별의 특색을 입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역할을 학사 운영의 핵심 기구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 장치인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를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닌 학생의 학업 결손을 치유하는 ‘러닝센터’ 기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성취율 40% 미달 위험이 있는 학생들에게 추가 학습과 재평가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학생의 재도전 의지를 데이터로 축적하여 학생부에 녹여내야 합니다. 또한, 소인수 과목이나 심화 과목 개설이 어려운 경우,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이나 학교 간 연합 교육과정을 상설화하여 학생들이 선택의 제약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제도적 인프라를 문서화하고 표준화해야 합니다. 학교는 이제 ‘과목을 개설하는 곳’을 넘어 ‘학생의 선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이제 지식의 전달자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기록하는 ‘큐레이터’이자 ‘학습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서강대가 주목하는 ‘왜 이 과목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수업 안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개별 학습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중간 점검과 기말 성찰을 통해 자신의 목표 달성 과정을 확인하게 하는 수업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기록 측면에서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질적 전환이 요구됩니다. 단순히 ‘수업에 열심임’과 같은 추상적 문구가 아니라, ‘어떤 의문을 가졌고(선택 이유), 어떤 자료를 탐구했으며(과정), 어떤 결과물을 도출했고(성취), 이후 어떤 분야로 호기심이 확장되었는가(발전)’라는 단계별 서사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특히, 수행평가의 루브릭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하여,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성취 수준을 예측하고 더 높은 난이도에 도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교사의 피드백이 학생의 결과물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기록하는 것은 대학이 가장 신뢰하는 ‘성장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에 교사는 이제 학생의 ‘능력’을 측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험생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곧 ‘입증의 책임’입니다. 권장과목이 사라졌다고 해서 학습의 강도를 낮추는 것은 치명적인 오산입니다. 수험생은 오히려 대학이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자연계열 학생이라면 수학과 과학의 핵심 원리를 관통하는 심화 탐구를, 인문계열 학생이라면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다학제적 접근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리스트가 없다는 것은 본인이 직접 리스트를 만들고 그 당위성을 설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학기별로 자신의 탐구 과정을 기록하는 ‘학습 로그’ 작성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개념이 실생활이나 타 교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과정에서 참고한 문헌이나 데이터는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훗날 학생부 기록의 소중한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면접 전형에서도 본인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또한, 내신 성적의 높낮이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어려운 과목에 도전하여 얻은 ‘값진 성취’가 대학의 평가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만의 교육과정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교육과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서강대학교의 이번 발표는 우리 교육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제 대입은 ‘어떤 과목을 들었는가’라는 체크리스트 기반의 평가에서,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가’라는 역량 중심의 평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이제 과목의 이름이 아닌, 그 과목 안에서 학생이 보여준 사고의 깊이와 확장성을 보려 합니다. 이는 학생부 종합 전형의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시스템으로, 교사는 기록으로, 학생은 성취의 증거로 답해야 합니다. 대학별로 상이한 입시 신호에 일일이 흔들리기보다는, ‘기초 학업의 견고함’ 위에 ‘본인만의 탐구 서사’를 쌓아 올리는 정공법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서강대의 파격적인 실험이 단순한 혼란으로 끝나지 않고, 고교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는 소중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육 주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진정성 있는 변화를 일구어낼 때, 고교학점제라는 거대한 함선은 비로소 학생들의 꿈을 향한 안전한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문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새로운 입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서강대의 ‘권장 이수과목 미제시’ 선언은 그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습니다. 대학이 정해준 틀에 자신을 맞추는 시대는 가고, 자신이 직접 만든 틀로 대학을 설득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혼란이겠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자신의 잠재력을 무한히 발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결국 성공적인 대입은 대학이 제시한 리스트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 본인이 선택한 길의 가치를 대학에 확신시키는 과정입니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수험생이 이 거대한 흐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각자의 역할을 재정의할 때, 우리는 대학 입시라는 관문을 넘어 진정한 성장을 일궈내는 교육의 본령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서강대가 쏘아 올린 이 작은 공이 우리 교육 현장에 건강한 자극이 되어, 선택의 자유와 성장의 기쁨이 공존하는 새로운 교실을 만들어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교육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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