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학종러의 학종준비법-탐구보고서 작성(2;보고서 작성하기)
안녕하세요~멘토 정치외교외길인생입니다!! 학종을 준비하시는 여러분들은 생기부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생기부를 채울 활동을 하라는데 어떤 활동을 해야할지, 그 활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때도 있을 것이고, 일단 하고는 있는데 그 길이 맞는지 햇갈리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에 제 경험을 여러분들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한 방식이 정답이라기 보다는 "이 사람은 이렇게 했구나~"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번에는 주제를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요, 이번에는 이어서 그 주제를 구체화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보고서를 쓰는 것은 주제를 구체화시키는 계획에서 출발합니다. 이 계획은 '개요'라는 이름인데요, 개요를 구체적으로 작성함으로써 글을 어떤 방향으로 전개해갈지, 근거를 어떤 식으로 들어서 주장을 풀어낼지를 확정해놓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랑은 분명히 글의 깔끔한 정도에서 차이가 나겠죠~~? 개요를 쓸 때는 일단 서론/본론/결론으로 큰 줄기를 나눠놓고 출발합니다. 서론에서는 주제의 선정 배경 및 문제제기를 통해 주제를 잡게 된 배경을 소개하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주장을 펼칠지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생기부 측면에서 봤을 때, 서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주제의 선정 배경'입니다. 주제의 선정배경을 설정하는 것이 곧 생기부에 들어가는 '텀구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자신이 탐구했던 주제를 발전시킨 계기를 적거나, 교과서에서 어떤 부분을 보면서 어떠한 궁금증이 생겼다는 내용으로 서론을 풀어내면 좋습니다. 본론을 소개하기 전에, 결론을 먼저 언급하자면 결론은 사실 생기부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중요하진 않습니다. 결론은 이미 본론에서 논증한 자신의 주장을 다시 언급해주는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에 생기부에서 엄청 중요시 여겨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선생님들께서 보고서를 열정적으로 읽지는 않으시니,,,ㅎㅎ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결론부에서 재언급해주면 선생님들께서 그 부분에 더 주목해서 생기부를 써주실 가능성이 높으니 결론에서는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위주로 본론의 주장을 요약/재진술하면 된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본론입니다! 본론을 구성할 때는 우선 개요의 형태로 구성하기 전에 마인드맵이나 간단한 도식화를 통해 주장의 흐름을 미리 정리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주제를 잡을 때 사용했던 논문의 내용에서 자신이 펼칠 주장에 관련된 내용을 뽑습니다. 여러가지 내용이 있겠죠? 여기서 자신이 펼칠 주장을 만들어내고, 그에 관련된 레퍼런스 혹은 사용할 논리를 논문을 참조하여 구상합니다. 그 구상한 내용을 아래 그림처럼 도식화시키면서 어느정도 논리를 점검하고 머릿속에 정리합니다. 위 브레인스토밍은 제가 한국사 수행평가를 할 때 “조선중화주의”에 대한 논리를 정리하기 위해 했던 브레인스토밍인데요,,, 너무 브레인스토밍이여서 여러분들이 알아보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ㅎㅎㅎ 하지만 이정도로 간단하게라도 흐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시각화하면 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할지, 어떤 부분을 바꿔야할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내용을 개요로 옮깁니다. 이때는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어떤 내용을 활용해 어떤 주장을 할지 본문의 구조 자체를 짜는 단계입니다. 위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개요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서론 1.1. 조선중화사상이란(신복룡 "한국사상사에서 중화주의의 형성과 맥락" 참고) 1.2. 우리나라 교과서, 이전까지의 연구에서 조선중화사상에 대한 네셔널리즘적 논의->사대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가 주로 진행됨. 교과서에서는 조선중화사상을 성리학적 이론에만 갇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조선중반기의 '정치적 한계'라고 지적 1.3. 이러한 네셔널리즘적 논의는 제대로 된 역사적 논의를 가리기도 함 2. 남호현의 논문 요약 2.1. 관왕묘에 대한 왕실의 스텐스 변화 요약 2.2. 논문의 결론에 대한 요약(조선중화의식에 대한 논문의 평가를 중심으로) 3. 논문 내용에 대한 검증1; 조선중화의식이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이 맞는가? 3.1.논문이 조선중화사상이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한 부분 재언급 3.2. 당시 조선의 배경(계승범 "조선후기 조선중화주의와 그 해석 문제" 참고) 3.2.1. 양란 이후 왕권의 불확실성 가중. 특히 중화의 중심이었던 명이 멸망하며 공황상태에 빠짐 3.2.2.효종시기 송시열을 중심으로 복수설치와 북벌론이 하나의 통치이데올로기로 떠오름 3.2.3. 시간이 지나며 현실적으로 북벌이 불가능하다는 인식 확산. 내수외양 강조로 바뀌고 그 중에서도 내수에 힘을 쏟게됨 3.2.4. 내수의 방안으로 조선중화, 중화계승이 떠오름 3.2.5. 송시열과 윤휴조차 '재조지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사료 포함해서 언급->당시 조정이 전반적으로 숭명배청의 분위기를 따랐음을 확인 가능 3.2.6. 이 배경으로 볼 때, 명의 멸망으로 인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부재속에서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조선중화주의가 기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음 3.3. 이후 왕들의 왕권강화방식 3.3.1. 숙종시기 환국 이후 붕당의 갈등이 심해지며 왕권의 위기가 여전(예송논쟁 등등) 3.3.2. 영조와 정조는 '계술'로서 권위를 새우고자 했음이 관왕묘 인식 변화를 통해 나타남 ->『일성록』 정조 8년(1784) 9월 20일 3.4. 위 근거들을 통해 조선중화의식이 하나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작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음 4. 논문 내용에 대한 검증2; 조선중화사상의 '한계'? 4.1. 남호현의 논문에서 "관왕묘에 대한 인식변화가 조선중화사상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부분 재언급 4.2. 한계라는 지적에 대한 의문점 제기-> 한계라는 평가를 살펴보면 재조지은을 숭명배청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화사상이 '중화'를 가늠하게 하는 세 요소(지리, 종족, 문화) 중 문화만을 선택적으로 강조한, 관념적으로만 대명의리를 강조하는 모순점이 있다고 주장. 그러나 이것을 한계라고 평가한다면 조선은 중화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중화를 표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허구적'이라고 평가한 것이 됨. 이 평가기준은 조선중화의식의 목적 자체가 '통치 이데올로기'였음을 간과한 평가. 4.3. 조선중화사상은 3에서 언급한 대로 왕권강화의 성격이 강했음 4.3.1. 당시 지식접근성이 낮았기 대문에 주로 이데롤로기를 결정하고 향유하는 계층은 소수에 한정됨. 그 소수는 양반이었고 그들이 중화주의로부터 자유롭긴 힘들었음. 4.3.2. 여론의 향유계층도 같은 집단이었음. 즉, 조정의 여론이 양반에 의해 결정됐고 그 여론은 곧 중화였다는 것임. 4.3.3. 이 여론을 향유하는 신하들이 숭명배청을 주장한 이유도 재조지은에 있었음. 즉, 조선중화사상은 단순히 중국을 따라가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음. 4.4. 조선중화사상은 왕권강화의 기능을 잘 수행함 4.5. 지리와 종족까지 챙기려고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왕권강화의 기능측면에서 조선중화사상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줌 4.5.1. 동시기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문명과 오랑케를 구분하는 것은 혈통이나 위치가 아닌 유교문화라는 점(민족문화대백과 '화의론'내용, 계승범"조선후기 조선중화주의와 그 해석 문제" pp.277~278.,'숙종 2년 6월 21일 임신 2번째기사' 참고) 4.6.결국 지리와 종족을 배제하고 문화만을 선택적으로 강조한 것은 한계가 아니라 조선중화주의가 채택된 배경을 바탕으로 봤을 때 전략적 선택임. 한계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음 5. 결론 남호현의 논문은 '조선중화사상'을 사대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네셔널리즘적 해석을 탈피하고자 함. 그러나 그 객관적으로 조선중화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시각에 매몰되어 사상 자체의 목적을 간과함. “”" 위 내용은 앞선 브레인스토밍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체화시킨 개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 개요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 문단씩 글로 써나가면 완성된 보고서가 나오고, 그 보고서를 이제 제출하면 되는 것입니다. 추가질문 있으면 질문 해주세요!! 다음에는 생기부로 보고서를 어떻게 옮겨야하는지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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