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제시문 면접에서 답 바꿔 말하고 최초합격했습니다
나는 입시를 치를 때 면접이 있는 전형은 절대 절대 지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특히 제시문 면접이라면 더더욱. 학교에 특강을 하러 왔던 우리 고등학교 선배님이 보여 준 제시문 기반 면접 기출 문제를 보고는 그 생각을 굳혔었다. 차라리 6개 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는 학교를 썼으면 썼지, 제시문 면접이 있는 학교는 무조건 제외할 셈이었다. 국어 비문학 지문 읽는 데에도 5분이 넘게 걸리는데 어떻게 8에서 10분 안에 제시문을 읽고 답변까지 생각하란 말인가? 내가 임기응변이나 발표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무리 학원에서 준비를 한다고 해도 한 달만에 내가 날고 기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장 추천 전형에서 제시문 면접을 봐야 하는 연세대학교는 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말이다. 만약 나와 같은 이유로 제시문 면접, 혹은 면접 자체를 고사하고 있는 수험생이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담임 선생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제시문 면접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면접 학원을 다니면서 제시문 면접을 준비했다. 연습 문제를 접해 보니 대학교에서 요구하는 제시문 면접이 내가 흔히 생각하는 ‘면접’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쉬운 비문학 지문을 말로 독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임기응변이나 창의력, 배경지식의 영역은 아니었다. 순발력으로 문제를 읽고 답을 찾기 위한 핵심 문장을 제시문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제시문 면접의 핵심이었다. 학생의 생각을 묻는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해진 답이 있고 학생은 그 답을 유추해야 하는 유형의 면접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시문 면접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학생은 이러한 제시문 면접의 성격과 특징을 알고 있어야 할 듯하다. 연세대학교 제시문 면접은 녹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받은 제시문은 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견해,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법을 제정하는 가상의 국가 A, B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내용을 다 잊어버린 걸 보면 제시문을 읽었을 당시에도 제시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시문에서 키워드와 핵심 문장을 뽑아 내는 것이었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학원에서 익힌 대로 문제를 먼저 읽고, 제시문들의 키워드를 빠르게 정리한 다음 그 키워드들을 기준으로 제시문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메모했다. 학원에서 본 연습 문제는 대부분 제시문에 (가)부터 (다)까지 3개였는데, 시험장에서 받은 제시문은 총 4개여서 좀 당황했지만 일단 준비 시간 8분은 완만하게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답변 과정에서 생겼다. 긴장감에 말이 빨라진 건 그렇다 치더라도, (가), (나), (다) 제시문의 핵심을 요약하는 1번 문제에 대답할 때 (나)와 (다)의 내용을 서로 바꿔서 말해 버린 것이다. 그걸 깨달은 후 당황감에 말은 더 빨라지고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자포자기한 건 아니었다. 한 달간 학원 다닌 시간과 면접장에 앉아 있는 내 간절함이 아까웠으니까. 심호흡을 하고 실수가 있었음을 밝힌 다음 차분하게 정정한 답변을 말했다. 이미 나온 실수를 신경쓰기보단 남은 문제들을 마저 푸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2번, 3번 문제를 풀 때에도 말은 절었고 동어반복이 몇 번이나 나오는 것을 나 자신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잘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제한 시간 5분을 꽉 채운 것. 수험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면접 후기들을 본 난 좌절했다. 나보다 답변도 좋고 당연히 실수도 안 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내 결과는 나에게도 이변이었다. 최초합격. 제시문 면접의 영향력이 상당히 큰 학교였기에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면접 학원 선생님이 내신이 압도적으로 좋으면 면접 못 봐도 된댔지만 난 그런 압도적인 성적도 없었다. 혹시 전산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동안 몇 번이나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전산오류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 나는 내가 대체 왜 합격을 한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채점자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두 개정도였다. 평정심, 그리고 지문 이해. 입시에 대한 내 확실한 믿음은, 생활기록부에 완전한 약점이란 없다는 것이다. 약점을 극복해 낸 과정이 드러날 때 그 약점은 오히려 학생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면접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을 때 당황감을 빠르게 추스르고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 나에게 가점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지문 이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선에서 지문을 이해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시문 면접에서 면접 대상자는 면접관에게 “저는 이 지문을 이해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시민들의 편의를 고려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공동체주의’와 같은 말로 치환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침착하게 “시민들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을 중시하는 국가”라고 말하면 될 뿐이다. 그게 내가 이해한 바이니까. 애써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겠다거나 있어 보이는 말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것을 100퍼센트 전달하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제시문 면접장에 있는 건 수험생 본인과 제시문 뿐이다. 제시문 면접을 볼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의 이해력과 제시문 속에 나와 있는 정보뿐이다. 내가 제시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제시문 속에서 핵심 단어를 뽑아내 보자. 그 핵심들은 나의 ‘이해’가 되고, 그 핵심 단어 안에서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생각을 하면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핵심 단어를 뽑아내는 속도는 연습을 통해 단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수는 당연히 안 하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 실수가 있었다면 포기하지 말고 답변을 정정해야 한다. 핵심 단어를 뽑아라. 평정심을 유지해라. 이 두 가지가 내가 생각하는 제시문 면접의 원칙이다. 영어 지문같은 어휘 변용, 패러프레이징도 거의 없고 국어 지문만큼 내용이 난해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쩌면 제시문 면접은 그 어떤 문제보다 단순하다. 입시의 무기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법이기 때문에, 제시문 면접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수험생이라면, 앞서 말한 원칙을 기억하며 제시문 면접을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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