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고교학점제

2022.07.01 3562명이 봤어요

신명고등학교 서정주 선생님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 관련 이슈 중에 가장 핫한 것을 고르라면 아마도 고교학점제가 아닐까 한다. 현 정부는 공약 자체가 정시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인수위 시절에는 고교학점제 시행 시기를 늦추겠다고 발표까지 했다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정부 출범 이후 발표 내용은 적어도 고교 학점제와 관련해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인수위 때 발표한 연차별 이행 계획을 보면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2023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고 명시한 점, 학사 운영 기준을 ‘단위’에서 ‘학점’으로 바꾸고 총 수업 시수를 축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고교학점제용 교육과정’이라 불리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202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적용한다는 점,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추진 시기와 관련하여 2022년 하반기 고교 체제 개편 방안을 마련해 2023년 하반기 고교 체제 개편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 점 등 그 내용과 절차가 이전 정부의 고교학점제 로드맵(단계별 이행 안)에 따라 새 정부에서도 2025년,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이 이뤄지는 셈이다.

그리고 드디어 5월 13일 ‘고교학점제’ 추진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2025년 전면 도입이 예고됐던 고교학점제가 이 정부에서도 예정된 일정대로 추진된다는 내용이다.

고교학점제의 시작은 박근혜 정부 때 발표된 2015 교육과정이다. 이 때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던 교과 선택제의 의의를 쫓아 고교학점제로 확대된 것이다. 고교학점제에 관한 논의는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오래도록 준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고교학점제 시행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교원 10명 중 8명은 고교학점제의 도입 시기를 미루거나 아예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대학 교원 8431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2022.05.11)에 따르면, '여건 마련 후 도입 시기 재결정'(38%)이나 '교육 현실과 괴리가 크므로 잠정 유예'(31.4%)를 답한 교원이 많았다.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응답은 15.9%, 원안대로 2025년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은 14.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교육 주체인 학부모의 반응은 어떠한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학부모 등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 교육 정책 중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정책을 꼽는 설문에서 고교학점제는 겨우 1.8%만 선택해 10개 교육 정책 중 최하위였다.

이렇게 교사도, 학부모도 고교학점제가 달갑지 않은 것은 ‘준비되지 않은 성급한 도입’이라는 이유와 ‘대입 제도와 맞지 않는 교육 제도’라는 이유다. 실제로 학교 내신의 절대평가, 대입 평가 제도의 변화 없이는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학생들의 다양한 교과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도 현실적 문제이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기초 학력 저하 문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고교학점제와 관련하여 교원의 업무 부담 증가, 교직 생활의 행복·만족도 하락은 뉴스 감도 아니다.

 

 

이 많은 문제 거리 중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대입 제도와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모순적이라는 점이다.

고교학점제와 어우러지는 대입 전형은 학종 전형이다. 결과적 수능 성적 만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정시를 보다 확대하겠다고 공고히 한 현 정부의 의지와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이에 어울리는 교과를 선택해 가는 과정을 평가하는, 그리고 일정 수준 성취도에 도달하였는가를 기록에 남기는 절대평가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고교학점제는 매칭되기가 매우 어렵다.

많은 현장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파행으로 흐를 수 있다고 걱정한다. 즉 학교에서는 진로·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으며 절대평가를 위한 적당한 공부를 하고, 사교육에서 열과 성을 다하여 수능 공부를 하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막상 2023년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기준부터 고등학교에서의 학업 생활까지 어떻게 계획하고 실천해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묘수가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2024년 2월에 고교학점제용 대입 제도에 관한 기본 방향이 결정되어 발표될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앞서 이야기한 모순점을 극복할만한 내용이 어느 정도는 담겨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현재 이 둘을 혼용하고 있는 전형이 있다면 판단의 근거를 삼아볼 수는 있겠다.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하고 시행하게 될 2023년 정시 위주 전형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대학교는 정시를 확대하면서도 여전히 수능 성적 비율을 80%로 한정하고 나머지 20%를 생활기록부상의 교과 영역 평가 점수로 채우기로 하였다.

물론 이 전형이 학생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고 사교육 의존이 심해질 수 있는 정시 전형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 생활은 학교생활대로 정시를 위한 땀은 땀대로 최선을 다해 흘려야만 서울대학교 입학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서울대가 선택한 대안이긴 하지만 정시 확대 방안을 강조하면서도 학종 전형을 계획대로 유지하겠다는 현 정부의 방향과 일맥상통한다고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2024년 발표될 고교학점제용 대입 제도가 이와 똑같다고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서울대의 정시 위주 전형처럼 두 마리 토끼를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예측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현재로선 없다.

팬데믹 이후로 학생들의 ‘온라인 교육’을 통한 실력 쌓기, 혹은 수능 준비는 더욱 심화되었다. 앞으로 정시를 확대한다거나 혹은 수능 성적을 대학 입학을 위한 주요 전형 자료로 삼는 한, 이러한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학교 생활이다. 물론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수능을 학교에서 준비하는 것이 충분하기가 쉽지 않다. 절대평가 위주의 교과 수업은 난이도 높은 문제풀이식 수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며 이에 어울리는 학업 역량을 키운다는 근본 취지 자체는 그 의미가 충분하다. 앞선 정부들이 각자의 색깔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향을 유지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미 ‘고교학점제’라는 배를 탔다. 이 배를 타고 있는 동안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필요한 지식을 채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항로가 될 것이다. 배에서 뛰어 내리고 한국 교육과 무관한 삶을 살겠다면 가능하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현 상황을 어정쩡한 동거가 아닌 희망 진로를 향한 항해와 실력이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는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일반